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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베뮤 디렉터 료, 동료 죽음 앞에 사라진 '진정성'

by 몽땅별

지난 7월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일하던 직원이 향년 26세, 과로사 의혹 속에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사측의 대응은 논란을 키웠다. 책임 회피에 급급했고, 유족에게 폭언을 가했다. 사건이 커지자 모든 지점의 온라인 후기를 막았다. 한편, 창업자 이효정(디렉터 료)은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전환했다.


내가 디렉터 료를 처음 접한 건 유튜브 ‘최성운의 사고 실험’이었다. 영상에서 그는 성공한 창업자라기보단 한 개인으로서의 솔직함을 보였다. “두려워서 비린내 날 것 같은 시간이 늘 있어왔다”라고 고백하며 창업 성공 과정에서 겪은 내면의 불안을 털어놨다. 그의 솔직함 덕분일까. 당시 나는 그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키웠던 것 같다.


그는 책에서 “누군가의 최단거리가 아닌 내 속도의, 내 방식의 여정을 하라”라는 조언을 건네며 좋은 어른의 자세를 보여줬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는 ‘자기다운 삶’에만 몰두한 나머지 함께 일하는 이의 속도와 무게를 잊은 모양이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가 영상과 책, 작품에서 보여줬던 진정성을 곱씹어 볼수록. 문제는 직원이 사망한 7월 16일 이후의 행보다. 디렉터 료는 사건 이후에도 언론과 전시전을 통해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이어갔지만, 자기 사업장에서 발생한 비극에 대해 어떠한 언급이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커지자 인스타 비공개 전환을 하며 사건을 회피했다.


그의 솔직함은 비극의 크기와 여파에 맞춰 가변적으로 변모했다. 그는 어른이기 이전에 사업자였다. 솔직히, 이상한 점을 감지했던 순간이 없지 않았다. 런베뮤의 주력 상품이 ‘베이글’인 이유는 생산 단가 우위에 있을 수 있다. 베이글은 버터, 우유, 계란 등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간단히 제조할 수 있어 일반 빵에 비해 원재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의 다른 사업장 ‘아티스트 베이커리’ 역시, 저렴하게 생산이 가능한 소금빵을 주력으로 한다.


또한, 과거 런베뮤는 카운터에 팁박스를 도입했던 사례가 있다. 대중의 뭇매를 받고 결국 도입을 취소했지만, 감성 이면에 숨겨진 경영 이윤을 높이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논란이 일자 당시 런베뮤 측은 “실제 팁을 받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인테리어용이었다”라는 변명을 했다.


런베뮤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영국식 풍경을 내세워 수많은 손님을 끌어모으는 그 공간에서, 직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디렉터 료라는 인물을 이상화했고, 그가 당연히 직원들의 고충에 성의와 관심을 다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오판했다.


런베뮤는 현재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인수했다. 인수가 진행되던 7월, 런베뮤 측은 사망사건에 대해 “잘 해결됐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족과 산업재해 여부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기업 매각을 문제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상황을 축소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런베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는 271억원으로, 인수 과정에서 런베뮤는 30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JKL파트너스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EV/EBITDA 기준으로 11배에 달하는 수치다. 당시 시장은 7배 수준으로 판단했다.


높게 책정한 기업가치에 부응하기 위해 매도자 런베뮤는 매출 극대화와 비용 극소화를 목표로 매장 확장과 인력 효율화를 병행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서, 인천 지점에 발령받은 청년 직원이 과로사 의혹 속에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디렉터 료는 회사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청년은 과로사 의혹 속에 숨졌지만, 런베뮤는 JKL파트너스에 2000억원에 매각됐다. 창업자 료는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했다. 엑시트 이후 그는 여러 매체에 출연하며 솔직함을 무기로 젊은이들을 매료해 몸값을 키웠다. 기업가의 면모는 감춰진 채.


그는 유튜브 ‘최성운의 사고 실험’에서 “17시간씩 노동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제빵업에서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오랜 관행이기에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높은 기업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감소를 명분으로, 이 관행은 내부적으로 정당화됐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된 지 2년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그가 언론에서 밝힌 자기 필명의 의미를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필명 ‘료(療)’가 ‘동료’를 뜻하는 한자어에서 착안됐다고 밝혔다. 이 필명이 무색하게 그의 사업장에서 청년 직원이 과로사 의혹으로 숨지고 말았다. 숨진 직원은 그에게 과연 동료였을까, 이윤을 위한 부품이었을까.


사건 이후 디렉터 료는 언론 요청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그가 평소 역설했던 것처럼 솔직한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인스타그램 등 소통 매체에서 해명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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