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기침체 속 청년들, 이들의 하루치 생존 전략

by 몽땅별

얼마 전 타업계 선배를 처음 만났다. 그전까지 그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물리적 거리는 멀었고 심리적 접점은 생길 수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 간에 솔직한 대화가 오가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먼저 진솔한 얘기를 꺼냈다.


대기업 홍보팀을 다니는 그는 푸념 섞인 불안을 털어놨다. 빈번한 연락과 언론 응대에 치이고, 대화 중 말실수는 안 했는지 자꾸 되짚게 된다고 했다. 근속연수도 걱정이란다. 대기업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신도 안 선다고. 물론 심각한 고민이라기보다 가벼운 넋두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농담을 하는 그의 말에 나름의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의 나이를 잘 모르지만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그는 갈등과 침체를 겪고 자란 청년이었다. 나 역시 비슷한, 아니 더 불확실한 상황이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절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대학을 잘 가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고, 대학생 때는 취업을 잘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대기업에 가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니. 잘 알고 있지만, 새삼 인생이란 참 쉽지 않다.


그 선배와 나의 고민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청년세대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모든 세대는 제각각의 사연을 품고 자랐을 터다. 현재 청년들은 불안과 경쟁 압력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장기 침체와 저성장 국면에서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겪어온 탓에 원대한 꿈보다는 현실적이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 듯하다.


나를 포함한 청년들은 이제 거대한 목표나 특별한 이벤트보다 안온한 하루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떤 이는 일상 속 루틴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다른 이는 소소한 취미로 보람을 쌓는다.


이는 통계로 나타난다. 빅데이터 분석 기업 코난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여행', '맛집' 등 외부 키워드 검색량이 줄어들고 '습관', '스트레칭', '아침' 등 일상과 밀접한 키워드가 증가했다고 한다. 과시적 취미보다 일상 속 가벼운 활동이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일의 평범한 하루에서 느낄 수 있는 위안, 작지만 꾸준한 성취감이 지금 청년들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하루치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이 전략은 세상이 주는 번아웃에 그저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자기 하루를 지켜내려는 분투다.


거대한 흐름에 순응하는 삶. 그 안에서 제 영역을 지키려는 작은 움직임. 인생이라는 강물에 하루치의 물방울을 보태어 자신만의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청년들. 세상의 급류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대신, 자기만의 순류를 지켜낸 물줄기 속에는 소박한 행복이 있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버텨내는 힘은 현재를 오롯이 누리는 데 있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런베뮤 디렉터 료, 동료 죽음 앞에 사라진 '진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