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대학 간판과 전문직 자격증의 종말

모범생의 시대는 끝났다

by 몽땅별

"대학은 고장났다"


미국 빅테크 기업 팔란티어의 창시자 피터틸은 이 같이 말했다. 그의 철학은 '틸 펠로우십'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했다. 틸 펠로우십은 2011년 설립된 창업 프로그램이다. 고졸이거나 대학 중퇴자 중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매년 선발해 대학공부 대신 창업을 돕는다. 틸 펠로우십은 학점이나 자격증 등 전통적인 스펙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강력한 실행력을 겸비한 '괴짜형 인재'를 선발하는 데 집중한다.


구체적인 운영 방식도 없다. 주입식 강연은 오히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선임자가 후임자를 가르치는 하향식 교육을 배제하고, 선발된 인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다가 한계에 부딪힐 때만 돕는 자율 주도형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 원칙에 따라 매년 22세 이하 인재 20명을 선발하며, 이들이 학교를 중퇴하고 창업에 전념하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제공한다.


틸 펠로우십 출신의 대표자는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있다. 이어 기업가치 26조원에 달하는 피그마 창업자 딜란 필드, 2020년 나스닥시장에 상장해 25세 나이로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오스틴 러셀이 있다.


피터 틸을 포함한 틸 펠로우십의 운영진은 대학을 거부한다. 틸 펠로우십 공동창립자인 짐 오닐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재들의 진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지적했다. 그는 “1950~1960년대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발견의 최전선으로 몰려들었지만 70년대에는 의사, 80년대에는 변호사, 90년대에는 월가(금융)로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대학이 독창성을 지닌 '개척자'를 길러내는 기능을 상실했고, 사회가 선망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순응적인 엘리트'만을 양산하고 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인공지능(AI)의 부상으로 대학의 존재 가치는 더욱 위태롭다. 과거 대학교수들의 전유물이었던 전문 지식은 이제 AI로 '딸깍'하면 손쉽게 익힐 수 있는 공공재가 됐다. 지식의 전달방식도 변화했다. 하버드나 서울대 등 명문대의 고품질 강의가 온라인에 널리 퍼진 가운데, AI는 이 데이터를 학습해 기존 대학교수보다 훨씬 정교한 1대1 맞춤형 튜터링을 제공한다. AI가 기성 대학 교육방식을 빠르게 대체하는 셈이다.


경제학적으로도 대학교육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클 스펜스는 대학을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곳이 아니라, 유능함을 입증하는 '신호'의 장소로 규정했다. 기업은 구직자의 능력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구직자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 위해 대학 졸업장이라는, 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를 구직 시장에 보낸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대학은 학습자들의 실력을 키우는 장이 아니라, 단지 선별을 위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대학이 우수한 인력을 육성하는 곳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었다. 이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문제는 대학 졸업자들의 순응적 배움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존 기술을 파괴하고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만드는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를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판단했다. 슘페터의 통찰력은 현대 경제학에서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2025년 노벨경제학상은 슘페터의 이론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경제학자 필리프 아기옹 등 교수 3명에게 돌아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순응하는 학생을 키우는 오늘날의 대입제도를 바꿔야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거듭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한 후 경제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며 저성장 늪에 빠졌지만, 여전히 개발도상국형 성공 방정식인 '따라잡기(Catch-up)' 모델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의 기술을 추격하며 후속 주자로서 성장하는 따라잡기 모델은 선발 주자(선진국)가 되었을 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돌파구를 여는 열쇠는 개척자의 창의력에서 나온다.


다만 따라잡기로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한국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인재 선발 기준은 여전히 창의성보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엉덩이 힘에 초점을 둔다. 문제는 학벌과 자격증이라는 낡은 신호에 집착하는 사이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꺼지고 있다는 점이다.


AI 시대는 더 이상 순응적인 모범생을 원하지 않는다. 정해진 답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내놓는 세상이다. 앞으로 살아남을 인재는 AI가 내놓은 답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창조적 괴짜'들이다.


학벌과 자격증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난 보증서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주의는 변화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는 있겠지만,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앞으로의 미래는 '성실한 추격자'를 길러내는 게 아닌 '위험을 감수하는 개척자'에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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