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킷 두 봉지의 힘

by 쿠쿠


드디어 무너진 울타리 철거 작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펜싱이 시작됐다. 철거와는 달리 새로 울타리를 세우는 일은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기에 하루 종일 작업해도 300m 이상은 힘들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에, 이름도 모르는 온갖 도구들이 잔뜩 실린 트레일러를 연결한 트럭에 비장하게 올라탔다. 푸르른 초원을 달려 정말 작은 마을을 하나 지나고 비포장도로를 덜그럭 덜그럭 달려 J의 농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저게 뭐지 하며 다가가 보니, 불에 새까맣게 타 피부 껍질까지 벗겨진 채 쓰러진 나무들이었다. 푸르른 초원에 알파카 일곱 마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우린 쇠막대기를 심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후, 마치 오토바이 엔진 같은 드르륵 소리를 내는 도구를 이용해 피켓을 땅에 깊숙이 박았다. 두 명이 기계를 들어 올려 피켓을 고정시킬 때, 다른 한 명은 조금 멀리 떨어져 막대기의 간격이 일정한지 체크하며 방향을 지시했다. 기계 소리가 꽤나 시끄러워 셋 다 귀마개와 안전모를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나머지 두 명은 새 울타리의 진로를 확보하고 쓰러진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토막 내 한 곳에 모았다.
이 곳을 소유한 농부이자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농부 중 제일 스타일리시하고(형광 노랑 작업복에 산타클로스 같은 빨간 비니를 70도 각도로 살짝 얹어 쓴 할아버지) 인상이 선한 J가 라즈베리 비스킷과 레몬 비스킷 두 상자를 가지고 중간에 인사를 왔다. 오늘 처음 이 농장에 합류한 나와 다른 동료는, 세상에 비스킷이라니 하며 좋아했고 이미 이 농장에 왔었던 동료들은 오늘도 주냐며 다 같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합쳐야 고작 6달러 될까 한 비스킷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완전한 게임 체인저였다. 쇠 철사를 촘촘하게 감고 굴삭기로 깊게 땅을 파내어 굵은 원기둥 모양의 쇠 막대기를 심고 콘크리트 반죽을 만들어 땅에 박는 등 손목과 뒷목, 등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우리는 없던 힘까지 끌어내어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추운 날 큰 고생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건네준 J는 다음날도 초콜릿 비스킷 두 봉지를 들고 네드와 함께 등장했다. 먹을 걸 주면 정말 이상하게 힘이 난다. 아닌 게 아닌지라 오전 내내 세찬 바람이 계속 불고 비까지 흩뿌려 오들오들 떨면서 작업했다.
억센 철사 세 줄을 35cm 간격으로 배치해 더 억센 철사를 세 번씩 구부리고 감아 고정시킨 뒤, 드디어 철 울타리를 돌돌 펼친 뒤 어기어차 끌어올렸다. 이후 링 건을 이용해 일정 간격으로 감아 마무리했다. 첫 번째 줄, 가운데 줄, 맨 밑의 줄마다 철을 고정시키는 건 다른 일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았지만 건 자체가 꽤나 무거워 오른쪽 손목이 너덜너덜해졌다. 시멘트 반죽을 다 붓고 내일 작업을 시작할 쇠막대기를 고정시킨 뒤에야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낼 수 있었다. 벌써 한시였고 장갑을 꼈어도 흙투성이, 시멘트투성이가 된 손을 대충 털고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었다. 드디어 해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칼바람은 여전했다. 다시 나무를 치우고 쇠막대기를 세우고를 반복하다 드디어 마지막 작업을 끝내니 세시 무렵이었다. 드디어 숙소로 돌아왔다. 정말 피곤했지만 비스킷 힘으로 버텼다.


이제 주된 작업은 펜싱이 될 거라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니, 우린 앞으로를 대비해 움직여야 한다고. 마치 엉망진창이 된 땅에서도 새 잎을 꾸준히 곧세게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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