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by 쿠쿠


함께 일하던 프랑스 동료 V가 프랑스 대사관에서 추진하는 마지막 고국행 항공편 대기자 리스트에 가까스로 이름이 올라가 오후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다는 소식으로 아침 조례가 시작됐다. 간밤에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지금 아니면 돌아갈 수 없을 거란 판단에 그녀는 가겠다 했고 오후 다섯 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게 되었다. 캠프에서 약 4주를 보낸 그녀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정말 서글피 울었고 과연 프랑스로 돌아가는 게 더 안전한지, 정든 캠프 식구들과 헤어지는 슬픔과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너무 크다며 목놓아 울었다.

저녁엔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스코티시 노부부 J와 A가 마지막 식사 후, 지난 한 달간 이 곳에서의 환대와 특별한 경험에 감사하다며 아쉬운 소감을 전했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내내 이어졌다. 이번 주에만 다섯 명이 이 곳을 떠난다. 먼 나라 이야기라 여기며 쉬쉬하던 호주는 이제 정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팽팽한 긴장감이 여기까지 든다.

3월 20일 금요일, 정부에서 48시간 안에 시드니의 상점, 레스토랑, 펍, 바에 대한 잠정 폐쇄령을 내리며 무수한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이 직업을 잃었고 나 또한 예외가 되지 못했다. 최대한 서둘러 이 곳에 합류한 게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쓸었던 게 25일 수요일이었다. 정말 사랑하던 바닷가의 집을 쫓기듯 영영 떠나고 봉사활동에 가서 입을 옷가지 몇 벌을 제외하곤 닥치는 대로 짐을 욱여넣은 수트케이스를 호주 친구네에 맡길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슬프거나 당황하진 않았다. 떠나던 당일 새벽, 텅 비어있던 내 방에 하나하나 가구를 채워 넣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을 나누고 기타를 치곤 했던 정든 곳이 더 이상 내 공간이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닫고 어찌나 마음이 허하던지.
서울, 런던, 바르셀로나, 베이징을 거쳐 시드니, 그리고 지금 이 곳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친구를 만들고 생활 반경을 넓혀가다, 이제 여기에 정말 적응했어할 때 꼭 떠나곤 한다. 주로 비자가 만료되어서, 혹은 다음 여정을 준비하기 위함이었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작별했는데, 이번엔 워낙 갑작스레 떠나게 된 터라 아직도 시드니로 돌아가면 내 반려 식물이 있는 하얀 방이 그대로 나를 반겨줄 것 같다. 시드니에 오기 전 2년간 터를 잡았던 베이징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나이기에, 시드니에 있던 8개월 동안 그렇게까지 정을 붙이진 못했었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주전부리를 챙겨 집에서 십분 남짓 떨어진 바닷가에 누워 한량처럼 책을 읽곤 했던 여름날의 오후라던가, 집 근처 언덕에 가만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노을이 내려앉는 하늘색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일상이 불쑥불쑥 떠올라 가끔 쓸쓸해진다.

이변이 없는 이상 이 곳에서 못해도 두 달, 길게는 세 달 동안 지낼 것이다. 이번 주에만 벌써 다섯 명이 고국으로 돌아간다. 기이하게 평화롭고 불안정한 생활도 언젠가 곧 끝나게 되어 있는데, 그 끝이 자의 일지 타의 일지 몰라 가끔은 불안하다. 작지만 아늑한 개별 텐트와 얼마 전 추가된 채식 식단,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이 곳에서 빌린 스키 자켓까지 있으니, 의식주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장 오늘 저녁 식사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웠다-직접 만든 후머스를 발라 구워낸 고구마, 데친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 당근 샐러드와 으깬 감자. 글루텐을 소화하지 못하는 나와 스페인 동료는 후식으로 라이스 푸딩을 먹었다-.
여덟 시면 다 같이 연장을 들고 비장하게 나갔다 너덜너덜해져 돌아오는 것도, 다 함께 멀찍이 떨어져 하는 운동 시간도, 저녁 식사 후 시대별, 나라별 카드게임을 즐기는 것도 이젠 모두 일상이 되었다. 가끔은 불협화음이 변주되지만 그래서 더욱 가족처럼 느껴지는 이 곳이, 부디 외부 사정으로 갑작스레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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