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쿠쿠


대지에 깊게 내려앉은 안개는 보통의 아침 풍경이 되었으나, 오늘의 무게는 꽤 깊었다. 하필 전혀 가본 적 없는 방향의 새로운 농장에 가게 되었고 하필 가는 길목에 빗방울이 굵어지다 거세졌으며, 하필 50km 넘게 달리던 도로에서 길을 물어볼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부러진 팔다리를 무심하게 걸치고 우리를 바라보던 검은 숲은 이미 안개에 반쯤 보이지 않았고 우린 뿌연 도로를 달리고 헤맸다.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아 전화조차 할 수 없었고 맹목적으로 믿고 달려간 지도 앱은 우리를 외딴곳으로 인도했다. 혹시나 해서 진입한 한 농장엔 웬 묘지가 있었고 그 집 창문으론 공포영화처럼 앉아 우리를 쳐다보는 할머니가 있었다. 군인 출신인 동료가 화들짝 놀라며 차 돌려 차 돌려! 하며 우리는 전속력으로 후진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땐 무서웠는데 다시 도로에 진입했을 땐 모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며 웃었다. 여긴가 하고 들어간 농장엔 사냥개 네 마리가 무섭게 짖어댔고 우린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기 바빴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보자 하여 들어간 곳은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버린 자동차 네다섯 대가 을씨년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 빗방울이 굵어져 어차피 일을 못할 걸 알았고 결국 두 시간 동안 헤매다 포기하고 캠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벌써 도착한 팀도 있었고 하나둘 엇비슷하게 돌아와 얼린 몸을 녹이기 바빴다. 비가 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비가 그쳐도 이미 젖어버린 땅이 워낙에 미끄러워 펜싱 작업을 할 수 없기에 결국 오늘은 모든 일이 취소되었고 우린 엉결에 자유시간을 얻게 되었다.

영토가 널찍하고 드넓은 탓에 한 농장에서 다른 농장으로 이동하려면 한참 운전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가 향한 곳은 정말 모조리 불타 있었다. 대개 아무리 산불 피해가 심했어도 잔디와 잡초가 워낙 금방 자라 다른 곳들은 검은색 반, 초록 반이었는데 반해, 그 지대는 그저 검은색이었다. 구멍가게 하나 없이 완벽하게 고립된 이 곳을 쓸고 간 불과 물의 흔적을 지날 때마다, 불과 몇 달 전 가슴을 치며 그곳에서 도망갈 수밖에 없었을 사람들의 절망을 감히 헤어릴 수조차 없었다. 떼죽음 당한 동물은 또한 어떠한가. 그 모든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아 안도하자마자 허망하게 도로에서 치여 죽은 생명을 하루에 한 번 꼴로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내가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교과서에서나 읽었던 역병이 지금 2020년에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퍼져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도, 내가 사실은 지금 이 곳에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모든 게 갑자기 다 믿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곳에 모여 우리가 하는 매일의 일이 더욱 현실감 없게 느껴질 때가 많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약 15년 전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까지 인간계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 천사 미하일의 깨달음의 과정을 담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6년간 구두장이 시몬과 그의 부인 마트료나와 함께 생활하며 미하일은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속엔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 그러나 사람에겐 자신의 육체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하늘로 돌아간다. 잊을만하면 가끔 떠오르던 이 책이, 이 곳에 온 이후 어느 순간 내 머리 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도 다시 이를 곱씹어보고 더 이상 긍정할 수 없을 만큼 동의하게 된다.
우린 사랑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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