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의 성비는 거짐 반반이다. 힘쓸 일이 많은 봉사를 한다. 쇠막대기를 뽑고 바닥에 깊게 매장된 철망을 자르고 굴려서 돌돌 말고 다시 쇠막대기를 굳게 심고 울타리를 다시 설치하는 등 매일 일이 끝나면 손목과 팔, 등, 다리 모두 얼얼하다. 여자는 철망을 말고 남자는 쇠막대기를 뽑는 식으로 일이 나뉘지 않는다. 모두 자연스레 돌아가며 일을 분담한다. 여자라고 일을 적게 하지 않고 여자라고 일을 적게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우린 결국 맡은 일을 다 해낸다. 혼자서 땅에 뿌리 깊게 매장된 철망을 뽑아낼 수 없으면, 둘이 하면 된다. 둘이 모자라면 셋이 하면 결국은 다 된다는 걸 직접 몸으로 깨달았다. 한 번은 남자 한 명, 여자 네 명이 배정되었는데, 어쩌다 남자 동료가 휴대폰을 일하다 잃어버려서 온 군데를 샅샅이 뒤지러 돌아가는 바람에, 우리 네 명만 남아 일을 한 적이 있다. 하필이면 땅에 철망이 모조리 매장되어있는 바람에 10cm도 들어 올리기 힘들었고 처음엔 두 명이 하다 힘에 부쳐 세명이 힘을 합쳐 들어 올리기 시작했고 나중엔 리듬이 생겨서 우다다 뛰며 철망을 뜯어내 버렸다. 고로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함께 하면 혼자선 절대 꿈쩍도 않는 무게도 들어낼 수 있는 거였다. 익숙해지고 손에 익으면 전기톱도, 스피너도, 닙스도 사실 누구나 쓸 수 있는 거였다.
마찬가지로 부엌일도 남녀 반반씩 맡아한다. 요리도 청소도 공평하게 분담한다. 주방 지휘는 노부부가 도맡아 하고 우리는 하나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다. 숙소 전체 청소도 마찬가지다. 농장으로 이동할 때 거친 비포장도로와 잔디밭을 드르르륵 운전하는 것도 모두 돌아가며 한다.
사실 이에 대해 그다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 뒤늦게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새삼 이 곳이 어떻게 돌아가더라- 하고 찬찬히 되짚어봤다. 이 곳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모두가 공평하게 같은 노동을 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태생적으로 우린 분명 다른 점이 분명 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여자라고 해서 힘쓰는 일을 애초에 못한다거나, 남자라고 해서 주방일을 처음부터 못한다는 생각은 문자 그대로 편견이라는 것이다. 나조차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곳에서 함께 일하며, 그건 무지하게 넘겨짚은 추측이었음을 깨달았기에, 함께 땀 흘리며 일하는 무게와 가치는 모두 동일하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