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보살핌

by 쿠쿠


늘 아침식사 시간엔 공지사항 전달과 함께 그 날 그 날 일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데, 오늘은 그간 주방을 책임져온 스코티시 노부부가 영국으로 곧 돌아가게 됐다는 소식으로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영국 정부가 해외에 있는 자국민을 위해 따로 항공편을 준비했는데, 가까스로 접수에 성공하여 이번 주 토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 도하, 런던을 거쳐 글라스코로 돌아간다고 한다. 사실 이 곳에 고립되어 있다 보니, 바깥 상황이 어지럽다는 건 알지만 크게 느낄 일이 별로 없었는데, 문득 맞아- 우린 지금 전 세계적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에 놓여있지- 싶었다. 그들뿐 아니라 이 곳에 온 지 삼일밖에 안된 아이리시 커플도 고국으로 곧 돌아가게 되며, 당장 내일 떠난다 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가족을 제외하곤 1.5m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한다. 영국 정부는 이 사태가 6개월 정도 지속될 것 같다 전망했는데, 부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이 곳에 오고 나선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몇 일인지 모르고 산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스트레칭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 샌드위치를 만들어 다 같이 일하러 나가고의 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외부 충격이 있을 때마다 얼떨떨하다.


산불, 홍수, 역병으로 너무 많은 것 혹은 전부를 잃은 농부들을 돕기 위해 모인 것은 모두 분명하다.

그중 나처럼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1년 더 연장해야 하고 싶은데, 농장과 봉사활동 중 이 곳을 선택해서 온 사람들이 참 많다.

커플, 부부 단위는 이 근방을 여행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 그리고 좋은 취지로 어쩌다 일주일 머무르기로 한 게 장기화되어 기약 없이 몇 주째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봉사의 사명을 가지고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건장한 할아버지 또는 노부부다. 때문에 그들의 태도는 다른 이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엄격하고 진중하며 어딘가 무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성별, 배경, 국적, 사연이 모두 다른 10~80대의 사람들이 약 40명가량 한데 모여 사는 곳이니 어찌 사건사고가 없겠는가. 그럼에도 이때에 이 곳에 모여 한 뜻으로 일하고 동고동락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역사에선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단상, 잿더미에서도 새 잎을 기어코 틔어버리는 생명의 강인함 혹은 단호함, 도움을 주기 위해 도움을 받는 수레바퀴 등. 그뿐 아니라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서야 할지, 어떻게 대처할지 등 이런 사소하지만 큰 질문 등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된다. 연쇄적인 선택으로 이 곳에 왔고 앞으로도 여러 가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려 할 때 고려할 점이 너무 많아, 어떨 땐 다 내팽개치고 아무거나 눈 감고 고르고 싶을 때가 있다. 예전엔 가끔 그렇게 나를 포기했었다. 그런 식으로 대학 원서를 자포자기하며 골랐고 그 후유증으로 몇 년을 상처 받았다. 결국 선택을 할 때 포기해버리면 그 후회와 상흔을 감당해야 한 건 나 자신이고 누구도 탓할 수 없으니, 그 어떤 선택도 쉽게 할 수 없다.


다행인 건 내가 시드니에 남아있지 않기로 한 것, 농장이 아닌 봉사단체에 오기로 선택했다는 것, 수많은 봉사캠프 중 이 곳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분별하고 상황 정리를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지를 고른다면, 그걸로 난 만족 하련다. 무얼 선택하든 결국 미련이 남고 기회비용이 떠올라 후회할 순 있어도 그때 최선을 다 해 선택한 나 자신에게 적어도 떳떳할 테니. 그래서 난 이 곳에 오기로 선택한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항상 가장 최우선으로 보살피고 챙기자 하며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인다색 공동체 생활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