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K

by 쿠쿠

이제 정말 가을 겨울 날씨다. 아침엔 침낭 밖 공기가 차가운 게 코끝으로 느껴져 일어날 때 벌떡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날 수가 없다. 이곳에 온 지 오늘로 딱 2주가 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벌써 이 곳 생활이 익숙해져, 이 캠프가 꽤나 집처럼 느껴진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도 다들 분주하게 준비하는 소리에 6시 반 정도에 일어났다. 평소 쉬는 날엔 아침을 먹은 뒤엔 점심시간까지 다시 잠들곤 하는데, 오늘은 부채감이 들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자 하며 포리지를 먹었다. 주방과 화장실 담당인 동료들에게 혹시 뭐 도울 게 없냐 물었더니,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괜찮다고 하며 화장실 청소를 맡게 되었다. 우리가 24시간 공동생활하는 이 곳에 있은지 2주가 되도록 화장실은 청소해본 적이 없었다. 새삼 내가 있는 곳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이 곳에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추운 날 눈비를 막아줄 지붕과 벽, 바닥이 있고 따듯한 난로가 있는 거실과 언제든지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차가 있는 곳에 있어서 감사하다.

일곱 벌 남짓 싸온 옷가지론 이 추위를 막을 수가 없어, 키위가 얼마 전 체리티 샵에 가서 왕창 빌려온 겨울옷더미를 뒤져 겨우 내 사이즈의 스키 멜빵바지를 찾았다. 밀렸던 일과 스페인어 공부를 살짝 하다 보니 벌써 열두 시가 되었다. 점심시간이야 하며 프라이팬을 탕탕 두드리는 B의 호쾌한 소리에 다들 옹기종기 모여 따듯한 토스트를 만들어먹고 어제저녁으로 먹고 남은 파스타와 으깬 호박과 완두콩을 곁들였다.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가는가 싶었다. 저녁시간에 홀에 나가니 테이블마다 웬 와인이 놓여있었다. 마침 오늘 생일자가 있어서, 축하하려고 준비했나 넘겨짚었는데, 알고 보니 내일 고향인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는 K의 고별 선물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모두 놀랐다. 이제 주 경계가 무기한으로 폐쇄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K는 저녁시간만 되면 늘 작은 와인잔에 백포도주를 담아 슬렁슬렁 거닐곤 했다. 새하얀 백발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그려져 있는 그는 내년 4월 1일부터 10월까지의 여행 계획까지 미리 세워둔, 평생 여행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여행 중인 나그네와 같은 사람이다.

저녁을 거의 다 먹었을 때, K가 일어나 한마디 했다. 여기에 있는 누구라도 혹시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오갈 데 없어지거나 곤경에 처하면 SA에 있는 자신의 집은 늘 열려있으니, 지내고 싶은 만큼 지내라고 말이다. 이곳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 배경, 연령대의 사람들 덕에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며, 고맙다며 다 같이 와인잔을 들었고 난 하릴없이 울음이 터졌다.

후식까지 다 먹은 후, 하나둘 텐트로 돌아갔다. 드문드문 테이블에 흩어 앉아 나른한 저녁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게 너무 아쉬워 K와 마지막 대화를 하려 같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난 K와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오며 가며 인사하고 농담을 건네본 게 다이지만 왜 그리 아쉬웠는지.

마지막 남은 와인을 마시며 K가 말했다. 사람들에게 항상 웃으면서 인사하고 밝게 지내니, 넌 잘 지낼 거야, 항상 꿈을 쫓아가, 마치 내가 그랬듯이. 난 그래서 후회하지 않아 라고. 속절없이 두 번째 울음이 터졌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볼지 미지수라는 것도 슬펐고 이렇게 다정한 말을 건네주는 상냥한 사람을 알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달이 차갑고 밝게 빛나는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언젠가 비슷한 달빛이 대지를 비추이면 난 오늘을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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