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다 그치다 다시 흩뿌리다 해가 쨍했다 했다. 그럼에도 이틀 내내 멈추지 않고 일한덕에, 지금까지 일해온 모든 농장을 통틀어 가장 길고 구불구불한 언덕에 울타리 다섯줄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
유자철선(barbed wire)은 매듭짓기도 까다롭고 워낙에 탄성이 세서 까딱하면 도루묵이기에 매사에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일할수밖에 없었다. 긴팔, 긴바지를 입었어도 팔, 다리 곳곳에 베이고 긁힌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중간에 빨간개미에게 발목을 물려, 당황스럽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이틀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오전히 흥많은 조원들 덕분이었다. 아침 여덟시, 다같이 농장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딥하우스 테크노 음악을 들으며 여섯명 모두 들썩이며 춤을 추고 열시, 한시 점심시간엔 뜨거운 차를 끓여 비스킷과 함께 즐기기도 하고. 세번째 줄부턴 다들 손발이 척척 맞아, 서로 말하지 않아도 분담이 자동적으로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운 울타리는 뾰족뾰족한 쇠철 한 줄에 기본적인 쇠울타리를 돌돌 펴 올려, 쇠고리를 걸어 완성했는데, 이번엔 뾰족뾰족한 쇠철 다섯줄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양을 주로 키우는 이 농장의 특성상, 차도 양옆을 오가며 풀을 뜯는 양들은 어차피 쇠철이 있어도 털이 뽀송뽀송해서 쇠울타리를 지나다녀도 다치지 않고 일반 울타리를 설치하면 양들이 울타리를 아예 뚫어버리기에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첫 쇠막대에 철사를 매듭지어 고정하고 나면 끝에서 대기중인 동료가 철사의 끝부분을 도구를 이용해 당겨 팽팽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텐션이 되면 트위처를 이용해 미리 땅에 박아둔 쇠 피켓에 일정 간격으로 고정시키고 언덕을 내려갈수록 텐션을 조금씩 풀어 끝까지 철사를 피켓마다 고정시키는 일의 반복이었다. 5cm 간격으로 뾰족한 매듭이 지어진 유자철선을 당기고 구부리고 매듭짓는건 단순하지만 손목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약 여덟시간이 지난 후 손목은 너덜너덜해졌고 뙤약볕에 익은 두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침엔 흥으로 가득했던 밴이었지만, 집에 돌아올 땐 다들 녹초가 되어 꾸벅꾸벅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보니 양 엄지 발가락 밑부분이 깊게 찢어져 있었고 유자철선이 얇은 바지를 뚫고 생채기를 낸 부분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진흙, 땀, 피를 씻어내고 잠시 숨을 돌리니 저녁시간이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흘러간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몇 일인지 모른채 비슷한 하루가 흘러가지만 한 뜻으로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동료들에게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