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벌써
울타리 철거 작업만큼은 아니지만 울타리 설치 작업도 이제 제법 몸에 익어, 조장이 따로 시키지 않아도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일을 분담하게 됐다. 목장갑을 뚫는 유자 철선에 최대한 찔리지 않으며 작업하는 요령이라던가, 탄성이 세서 두 손아귀의 힘을 최대한 써 구부려야 하는 철선 매듭짓기 등 처음엔 어떻게 저걸 하나 싶었던 것도 다 결국 하게 되어 있었다.
최근엔 굉장히 가파른 숲 속 한가운데에 울타리를 설치 중인데, 산불로 이리저리 쓰러진 늙은 나무들을 톱질해 길을 트는 것부터가 일이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무더기로 쏟아진지라, 그렇게 나무를 옮기고 나면 트랙터로 길을 왔다 갔다 하며 갈아줘야 한다. 그 후에야 4m 간격으로 쇠 피켓, 맥시, 포스트를 땅에 박을 수 있다. 터가 고르지 못하면 제아무리 튼튼한 울타리를 펼쳐 세운들 금세 무너지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굴을 깊고 넓게 파는 웜뱃이라던가 야생 캥거루, 왈라비 등에 의해 울타리가 훼손되던가 혹은 제풀에 꺾여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울타리를 빨리 세우고 싶으니 피켓부터 무작정 세우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아. 땅이 고르지 못하고 길을 제대로 치워두지 않으면, 나중에 피켓을 세울 때 두 배, 세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공들여 기초 작업을 꼼꼼히 하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면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끝낼 수 있다.
전기선 세 줄을 일정 간격으로 맞추고 울타리 망을 세운 후, 유자 철선 세 줄을 세운다. 링 스테인 플러 건으로 선들을 한 줄로 모아 30cm마다 고정시키면 울타리 설치 작업이 마무리된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뭘 할지 몰라 헤맸던 일도 결국은 이렇게 적응되어 척척 하게 되고 영원히 안 갈 것 같던 시간도 어느덧 훌쩍 흘러, 이곳에 온 지 벌써 47일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