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곳에 온 이후 기록적으로 긴 날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농부인 M의 농장에서 삼일 연속으로 펜싱(fencing, 운동 펜싱 말고) 작업을 이어받은 날이었다. 한 3주 전 처음 팀이 구성되어 갔을 때, 매니저가 주의를 주긴 했었다. 사전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 그가 굉장히 까탈스러웠으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까탈은 웬 말, 정말 즐겁게 일했다. 다른 농부들과 달리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초대해 모닝티, 런치를 늘 만들어주고 함께 일하는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거 주면 좋은 사람이다. 근데 이외에도 따듯하고 겸손한 면모까지, 단연 내 최애 농부였다. 오늘은 그를 지금까지 본 이후로 펜싱 작업을 잘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까다로운 그의 다른 면모를 보았다.
애초에 피켓을 드릴링할 때 왜 홀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는지도 의문이었는데(보통 울타리 안쪽을 향하게 함), 그가 강력히 원하고 맞다고 하니, 재차 확인한 후 쭉 작업했다. 이후 플레인 와이어 네 줄을 13, 90, 100 간격으로 연결하고 스트레이너로 잡아당겨 마지막 포스트에 매듭지었다. 그 위이 매쉬(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울타리)를 올려 한번 더 스트레이너 작업을 한 후, 링건(ring gun) 작업을 일정 간격으로 하는 것까지가 pulling up의 마무리다. 한데 오늘 아침 여덟 시 반부터 한시까지 작업한 것을 중간에 확인하더니, 방향이 틀렸다며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 총 네 명이 얼굴에 검댕이 묻었는지도 모르게 작업하다 얼마나 힘이 빠지던지. 그리고 사실 그가 요청한 사항은 애초에 이틀 전, 나와 다른 팀원이 이게 맞는 것 같다고 했던 방향이었고 당시 그가 아니라며 수정을 지시했던 것이다. 즉슨 처음부터 우리가 생각했던 게 맞았던 것이다. 일단은 너무 허기가 져 점심을 먹고 다시 작업하기로 했다. M이 특별히 칠리 나쵸를 준비해줘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후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보통 아침 여덟 시 반부터 두시에서 세시까지 일하고 캠프로 돌아가는데, 이미 세시가 훌쩍 넘었고 아무리 뛰어다니며 일해도 스크래치부터 다시 시작했으니 당연히 목표로 한 지점까지 일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팀원 중 한 명은 결국 폭발했다. 이 일은 애초에 산불 복구 "봉사"이지, 돈을 받는 일도 아니며, 우리가 이전에 펜싱 경력이 10년 넘는 경력자도 아닌데, 봉사자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고 너무 부려먹는 게 아니냐며 흥분했다. 아무리 우리가 이 캠프에 합류한 이후부터 펜싱을 배웠다지만 그래도 두 달 넘게 하고 있으니 우리가 뭘 하는지 아는데, 처음부터 우리를 믿고 내버려 뒀다면 진즉 끝났을 거 아니냐며 말이다. 그는 결국 일을 그만두고 머리를 식힐 겸 산책을 갔고 나머지 세명은 어떻게든 플레인 와이어 작업만은 끝내고 가자며 말도 섞지 않고 일했다. 네시가 되어서야 목표치의 70%를 할 수 있었고 드디어 농장을 떠났다.
내일 비가 올 예정인지, 하늘엔 유독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아름답게 햇빛이 내려앉은 도로를 그저 빠르게 지나갔다. 몸이 피곤한 거야 이 곳에 온 이후 늘 그랬지만, 이번엔 정신적인 피로함까지 더해져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음악도 듣고 싶지 않았다.
삼일 내내 이곳에서 일할 때마다 거의 다섯 시가 되어야 캠프에 돌아오는 바람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요가나 운동도 못하고 몸이 점점 더 뻐근했기에, 오늘은 어떻게든 뭐든 하리라 하고 네시 반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독일 친구 D의 요가 수업에 갔다. 마지막 명상을 할 땐 거의 잠들 뻔했다. 한 시간 반 가량 요가를 하고 나니 몸이 풀렸지만 저녁 식사 전 시간이 없어 샤워를 미뤘다. 통 크게 썰린 삶은 감자, 호박 그리고 시금치, 렌틸을 욱여넣고서야 뜨거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이 곳에서의 긍정적인 날만 기록했기에 오늘 글을 쓸까 말까 했으나, 사실 이런 날이 꽤 있고 이런 날이 있기에 조금씩 배워가고 다른 것에 더 감사하게 되는 것이니, 기념으로 기록해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