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 곳이 나의 집

일상생활이 고정된다는 것

by 쿠쿠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었다. 인도에서 약 오 년간 수련한 독일 출신 요가 선생님이자 친구와 함께 새벽녘 거실에서 요가를 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물구나무를 제대로 서고 시작한 아침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숙소 청소를 해야 하는데, 모두가 분주하던 아침, 관리자의 요청으로 급히 현장에 나가게 됐다. 마지막 남은 재료들을 섞어 급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방에 구겨 넣고 차에 올랐다.


이제는 익숙한 양 떼 목장을 지나 하얗게 내려앉은 길을 한참 달렸다. 200 에이커가 넘는 개인 농장을 몇 개나 지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고 간단한 일과 소개를 받은 뒤 울타리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약 500미터를 해체하는데 두어 시간이 걸렸고 첫 번째 점심시간을 가졌다. 이어 언덕길의 울타리 해체 작업을 시작했는데, 땅에 뿌리 깊게 박힌 쇠막대기를 뽑아 올리고 도구를 옮기고 다시 고정시켜 들어 올리기를 몇 시간 반복하니, 더 이상 내 등이 나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 멀리 다리를 다친 양을 보살피러 뛰어가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땅에 매몰된 울타리를 파내어 데구루루 말고를 오후 세시까지 반복한 후에야 오늘의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덕분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굳이 생각한 게 있다면, 이 1.3km 구간에 다시 울타리를 설치하려면 대체 몇 시간 아니 며칠이나 걸릴 것인가 정도. 상상만으로도 손목이 아렸다.

농장을 빠져나가던 길에 차를 보고 놀라 도망가는 거대한 양 떼 무리의 뜀박질 속도에 감탄하고 부디 다친 양이 괜찮기를 바랐다.


숙소에 돌아와 뜨거운 물에 피로를 녹이고 바람이 살랑 부는 정원에서 독일 친구의 지도 아래 요가 시간을 가졌다. 함께 참여한 프랑스인 커플은 마지막 명상이 끝나고 펑펑 우는데, 새삼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저녁을 먹고 잠시 얘기를 나눈 서호주 출신 할아버지는 그가 항상 놓치지 않는 백포도 주잔을 즐기며, 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생각하고 실천시켜야 한다며, 자신의 삶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S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우리 여기에 있어 참 좋다 하고 푹한 미소를 나눴다.

쌀쌀하고 청명한 밤엔, 별을 보러 가자는 예문을 스페인어로 알려주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은하수를 보고 별자리를 찾아보던 중, 개인 텐트가 배부되어 친구들과 셋이 함께 지내던 텐트에서 바로 앞으로 짐을 옮기는 대대적인 작은 이사를 했고 드디어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들에 둘러싸인 와중에 나의 천막까지 생겼으니, 더 이상의 친절함까지 받는다면 나중에 떠날 때 분명 슬퍼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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