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함께 살아간다는 것

by 쿠쿠


스트레칭을 한 시간 넘게 하고 잤음에도 어제의 노동으로 온몸이 뻐근했지만, 아침 요가를 위해 삼십 분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조원 모두 오늘은 어제보단 노동의 강도가 낮았으면 좋겠다며 어제와 같은 농장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커다란 캥거루가 떼 지어 겅중겅중 뛰어 안갯속으로 꿈처럼 사라졌다. 전 날 절뚝이던 양이 걱정되어 그 근처에 가보았으나, 양 떼 무리를 발견했을 뿐, 그때의 그 양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무사하길 바랄 뿐.


거의 500미터 정도의 구부러진 울타리의 철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는 게 오전의 수행과제였다. 철시를 돌돌 감는 도구를 농부가 빌려줘서 망정이지, 예전처럼 손으로 감았으면 이리저리 튕기는 바람에 꽤나 고생할 뻔했다. 약 10미터 간격으로 다들 철사를 당겨 시작점에 있는 조원이 맷돌을 돌리듯 철사를 감았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여섯 개의 철사를 동그랗게 감아 한 곳에 모아 두고 점심을 먹었다. 풍경화 속에 앉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길 나흘째지만, 아직도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보단 힘든 일이 아니라 안도했다.


하지만 다음 과제는 어제보다 더 험난했다. 산불에 뿌리째 불타 쓰러진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베어 땅 속에 어지러이 묻힌 철망을 파내 두루마리 말 듯 굴리다 보니, 이 농장은 대체 왜 이리 쓸데없이 넓은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200 에이커가 넘으니 정말 어마어마하긴 했다.

잿더미와 흙이 엉겨 붙은 땅 깊은 곳에서 타다닥 소리를 내며 감자를 캐듯 철망이 우수수 떨어져 나올 때, 꽤나 많은 새싹이 한꺼번에 뽑혀 나오기도 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 재해 속에서도 씨앗을 뚫고 메마른 토양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끝내 머리를 들고일어난 그들을 가차 없이 이유 없이 뜯어버리는 것 자체가 너무 야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행위를 지속해야만 했다.

두시 반 정도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언덕 끝까지 묻힌 울타리를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차를 세워둔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문득 뒤에 혼자 남겨졌을 때, 불현듯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거대한 숲의 역사에 서있구나 하는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까지 새까맣게 탄 나무줄기에서 계단 모양으로 돋아나고 있는 선홍비 단풍잎들, 연둣빛 새싹들, 그리고 여기저기 고통에 쓰러진 나무 시체들 사이를 아주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갑자기 산들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바람에 몸을 식히며 우리가 출발했던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저녁시간 이후, 독일 친구와 칠레 친구가 채식주의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이러다 싸움이 나겠구나 싶을 정도로 고조되다, 어느 순간 보니 둘은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갸우뚱했던 나는 다시 스페인어 공부에 열중했다. 창 밖을 세차게 두들기는 빗소리에 왠지 김치 부침개가 그리운 평화로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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