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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 위의 포뇨 Mar 29. 2019

서정적인 미스터리 소설, 스위밍 레슨 서평

소설 속 더 와이프를 만나다.

줄거리


잉그리드는 대학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결혼한 남편 길 콜먼과 살아온 이야기를 수십 통의 편지에 담아 책 곳곳에 숨겨 두고 사라진다. 경찰과 기자들은 그녀가 익사했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12년 후, 길은 서점 2층 창가에서 인도에 서 있는 아내를 봤다고 확신한다. 길은 서둘러 그녀를 따라가지만 해변 산책로 난간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플로라와 낸은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그들의 집인 스위밍 파빌리온에 돌아온다.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고 믿는 작은 딸 플로라와 현실을 직시하는 큰딸 낸, 두 자매의 어머니이자 유명 작가 길 콜먼의 아내 잉그리드 콜먼. 밤새 잠들지 못하다 새벽이면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의지해야 했던 그녀는 정말 죽은 것일까? 한창 이름을 날리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딸을 두고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길과의 만남부터 결혼 생활, 이별까지 수수께끼처럼 긴 세월 책 속에서 침묵하던 그녀의 편지가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그 비밀이 밝혀지는데…….


 얼마 전 관람한 영화 <더 와이프>와 놀랍도록 닮은 <스위밍 레슨>은 영국 왕립 문학회 앙코르 상 수상작가인 클레어 풀러의 서정 미스터리로 2017년 '아마존 최고의 책', '엘르 여성작가 최고의 책' 등에 선정되었으며 NPR(National Public Radio)로부터 “매력적이다! 클레어 풀러의 <스위밍 레슨>은 아늑하지 않은 듯 아늑한 미스터리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스위밍 레슨>은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여자와 남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스위밍 레슨>은 결혼 생활과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심리를 다룬 드라마에 더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스위밍 레슨>은 결혼 생활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고, 임신과 육아에 대한 여성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형식적인 측면에서 <스위밍 레슨>은 미스터리의 정석과도 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총 43 챕터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잉그리드가 과거에 쓴 편지와 현재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스위밍 레슨>은 이러한 전개를 통해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잔잔한 이야기만으로도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접점, 즉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가 사라진 이유와 그녀가 정말 사망했는지 따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단선적인 이야기에 비해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하기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편지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길 콜먼의 실체와 다른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독자의 호흡을 조여 온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스위밍 레슨>은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 말했듯이 400페이지의 두꺼운 이야기 속에는 그 어떤 신체적인 폭력 및 범죄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는 미스터리 소설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경찰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니다. 이 소설은 잉그리드가 16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감내해야 했던 정신적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의 삶은 지겹도록 고통과 희생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랑 앞에서 나약했던 죄밖에 없는 그녀는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며 읽히지 않을 편지를 쓴다.



서정적인 문체


까만 바닷물은 흔들림이 없었어요. 수면 아래로 내 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졌죠.


 <스위밍 레슨>의 문학성은 여성의 삶의 문제를 일렁이는 물결과도 같은 부드러운 문체로 조망했다는 데 있다.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은 꾸밈없는 문장들은 독자의 가슴속에 깊이 파고들어 진득한 울림으로 남는다. 잉그리드의 편지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며 절대로 파도가 들이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감정의 절제는 오히려 그녀가 느끼는 절망의 차가운 단면을 부각한다. 한 달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그녀는 마치 유서처럼, 지나온 날들의 회한을 편지에 담담히 풀어낸다. 마치 새벽 5시의 바다처럼, 그녀의 편지는 잔잔하지만 차갑고, 반짝거리지만 새카맣다.


플로라는 새까맣게 타서 뼈대만 남은 거대한 생물체 안에 서 있었다. 고래나 공룡의 흉곽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바닥으로 여러 개의 띠 같은 햇살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전히 탄 냄새가 났다. 유일하게 순수한 검은색 냄새였다.


 편지라는 완벽한 1인칭의 매체에서 벗어나 남겨진 가족들은 철저히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스위밍 레슨>의 한 챕터, 챕터를 넘기는 것은 마치 갑작스럽게 TV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가족들의 이야기는 잉그리드의 파멸로 몰아간 남편 길 콜먼이 아닌, 둘째 딸 플로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버지와 유난히 친했던 플로라는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모른 채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훌륭하고 멋진 작가라고 믿는 플로라의 시각은 잉그리드의 편지와 상충하면서 거대한 의문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드러나는 진실은 이미 곪아버린 상흔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 와이프


 <스위밍 레슨>은 최근 개봉한 영화 '더 와이프'와 놀랍도록 닮았다. 더 와이프의 조안과 스위밍 레슨의 잉그리드 모두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문학 교수와 사랑에 빠져 엄청난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제자와 결혼하게 된 남편들은 대학에서 쫓겨나고 글 실력마저 형편없어 가난한 생활에 시달린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남편은 작가라는 매력적인 직업을 이용해 여자들과 바람을 일삼는 난봉꾼이지만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갇혀 차마 이혼을 선택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교수와 놀아났다는 명목 하에 대학에서도 퇴학당하고, 집에서는 폭력적인 바람둥이 남편 밑에서 묵묵히 출산과 양육의 노동을 감내한다.



 하지만 두 여인의 처지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더 와이프에서 조안은 자신의 뛰어난 글 실력을 이용해 대필작가로 활동한다. 그리고 그녀가 글을 쓰는 동안 그녀의 남편은 각종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했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능력 앞에 당당할 수 있었고 남편은 그녀를 도와 가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스위밍 레슨>의 잉그리드는 학벌도, 경력도 없는 데다 텅 빈 방 안에서 들어오지 않는 생활비를 기다리며 딸 둘을 키워야만 하는 처지다. 심지어는 일을 핑계로 수개월을 집에 연락도 하지 않던 길 콜먼은 둘째 딸 플로라를 제대로 키우지 않았다며 잉그리드의 뺨을 때린다.


 물론 더 와이프를 보면서도 조안이 겪어야 했던 수모에 가슴이 답답했지만 그녀가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위밍 레슨>은 다르다. 잉그리드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늘어나는 마음의 무게는 길 콜먼의 참회 아닌 참회 후에도 씁쓸하게 생채기를 남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가 살아있기를, 어디선가 통쾌한 복수를 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풀러는 끝내 우리에게 확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말미에 공룡이라는 다소 황당한 단서로 독자에게 희망을 넌지시 제시했을 뿐이다. 그녀가 비록 '나를 찾아줘'의 에밀리처럼 치밀한 복수극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잉그리드가 떠난 후 길 콜먼이 그가 그녀에게 줬던 고통만큼 불행했기를, 그리고 잉그리드가 절망의 늪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행복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원문출처: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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