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섬 레인보우 뮤직 & 캠핑 페스티벌 프리뷰
어렸을 때부터 나는 팝송이 좋았다. 국문학보다는 영미문학이 좋았고, 한국영화보다는 할리우드 영화가 좋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심취해 있었던 것은 브릿팝으로, 고등학교 3학년 내내 브릿팝 이외의 다른 노래는 아무것도 듣지 않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트래비스와 오아시스, 뮤즈와 블러. 그러나 나는 브릿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브릿팝을 제외한 밴드 음악은 절대 듣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사춘기 특유의 이상한 자부심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이러한 배척과 편견은 음악적 식견이 좁아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초 아트인사이트에 잔나비에 관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여전히 브릿팝이 세계 최고라고 믿고 있었던 나는 당연히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잔나비에 관한 글이 두 편이 되고, 세 편이 되자 한 번 들어나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나는 후회했다. 이 노래 외에 다른 노래는 다 시시하게 느껴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다 유명해지고나서야, 심지어는 남들보다도 늦게 보석 같은 노래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짜증도 났다. 그러나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끔찍한 문화 사대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
매일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멜로디, 한 편의 시같은 가사. 그러나 그보다도 나의 귀를 사로잡았던 건 브릿팝과 케이팝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 있는 곡의 분위기였다. 분명 장르를 따지자면 90년대 얼티네이티브 록이 맞는데, 자꾸만 이문세가 떠오르는 이 앨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중에 인터뷰를 읽어 보니 잔나비는 산울림과 오아시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역시나 역시나. 리암 갤러거가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이 앨범과 사랑에 빠지게 된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2달이 조금 넘게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내 글이 네이버 메인에 올랐던 날을 선택하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튜브로만 보았던 백예린의 살랑거리는 치맛자락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색, 흥겨운 리듬의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드럼.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콘서트를 대중문화와 재즈의 결합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로 풀어낸 글이었는데 네이버 메인에까지 오르게 되니 그녀의 앨범이 마치 행운의 부적이 된 것만 같았다.
콘서트 당시 백예린은 2년 만에 신규 앨범을 낸 상태였지만 윤석철 트리오와의 컬래버레이션 공연이었기 때문에 신규 앨범 중 2곡만 들어볼 수 있어 아쉬워하는 관객이 많았다(개인적으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곡을 불러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정말 행운의 부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서트 말미에 그녀는 아쉬워하는 관객들에게 앞으로 있을 페스티벌에서 이번 앨범 전곡을 들어볼 수 있을 거라며, 페스티벌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장을 나오니 그녀의 이름이 적힌 페스티벌 홍보지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자취 생활에 쪼들리고 있는 내게 99000원은 너무도 큰돈이었다.
그러니 잔나비와 백예린의 이름이 적힌 레인보우 페스티벌이 아트인사이트 문화연계에 올라온 것을 본 내가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알길 바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수박 덕후가 여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나는 6월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다채로운 음악과, 화려한 라인업 맛있는 음식이 넘치는 이 축제를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낭만과 청춘의 땅에서 펼쳐지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한 야간비행(魔女の花)
원문 출처: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1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