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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 위의 포뇨 May 20. 2019

오페라 <나비부인> 프리뷰

사실주의와 예술의 딜레마

시놉시스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국의 해군사관 핑커톤은 집안이 몰락하여 기녀가 된 15세의 나비 아가씨, 초초상과 결혼을 한다. 얼마 후 핑커톤은 곧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나버린다. 3년이 지나도 그가 돌아오지 않자 주위 사람들은 그녀에게 재혼할 것을 권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핑커톤이 그녀의 아기를 입양하기 위해 일본으로 입항한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나비부인은 그의 아들과 함께 핑커톤을 기다리는데 그는 부인 케이트를 데리고 나타난다. 모든 것을 알아차린 나비부인은 아들을 케이트 부인에게 맡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도로 처절하게 자결한다.


 시놉시스만 놓고 본다면, 나비부인이 아직도 전 세계에서 공연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남성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다는 노골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중혼을 저지른 핑커톤이 연락도 없이 나타나 초초상의 아이를 데려가 버리는 줄거리는 불편하고 껄끄럽다. 생전 동양에 가본 적도 없는 푸치니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사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작품이 현대의 시대상과 어긋난다고 해서, 작품을 관람하는 것마저 불순한 행동이 되는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불멸의 고전인 '톰 소여의 모험'조차 흑인 비하 단어의 과도한 사용으로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지금, 무작정 '훌륭한 작품이다'라는 명제로 나비부인이 갖는 문제점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장 21세기식 분서갱유를 실시할 것이 아니라면, 이 불편하게 빛나는 고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싶을 뿐이다.


나비부인의 비판점을 뒤집어 해석한 연극, M, Butterfly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껏해야 주인공의 정부나 아내로 등장했던 여성이 소설의 전면부에 등장한 것은 서프러제트 운동이 시작되고 성차별 문제가 대두되던 당시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여성 서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여성 화자가 직설적으로 성차별의 울분을 토하는 소설과 여성 억압적인 사회에서 결혼과 불륜,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이 그것이다. 전자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나 나혜석의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가 속한다면, 후자에는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리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은 '왜 안나 카레니나와 마담 보바르는 미소 지니의 비판에서 자유롭지만, 나비부인은 그렇지 못한가'이다. 두 작품 모두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겪었고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소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지만 아무도 안나 카레니나를 여성 혐오적인 작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만연한 성차별을 부각하고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 선구적인 소설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위의 인물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 불만이라면,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뒤라스의 연인은 또 어떤가? 이 작품은 추악한 예술의 이면인가, 아니면 추악한 현실의 고발인가?


…꼭 풀어나가야 할 이 시대 우리의 비극인 것이다.    
2019년 노블아트오페라단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원작의 가치와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100여년이 지난 지금의 관객 정서와 현대화된 무대에 맞게 풀어나갈 것이다.                     

-언론 보도자료 중 발췌-


 단순히 차별적인 시선에 고통받는 주인공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차별적인 작품이 되는지 의심스러우면서도, 초초상의 비극이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로 둔갑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고전의 시대착오적 설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위 홍보문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원작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관객 정서에 맞게 풀어낸 나비부인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정말 홍보 문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나비부인을 가련히 여길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마저도 초초상은  불행할 테니.





원문 출처: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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