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큰 획
선생님의 침을 얼굴에 묻혀 본 적 있나?
나는 있다.
그날은 코 끝이 찡하고 볼이 아리도록 추운 날이었다. 고등학생들 사이에 패딩이 유행하지 않던 시절이어서 코트로 겨우 추위를 막으며 학교로 향했다.
유독 빨갛던 볼 때문에 빨강과 관련된 다양한 별명으로 불렸던 나는 실내와 실외의 기온차가 크면 유독 더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한 선생님이 보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으셔서 저렇게 달리실까?'
속으로 생각하며 복도 가장자리로 비켜서 걷는데, 그 선생님이 중앙으로 달리던 경로를 바꿔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곤 부지불식간에 손가락에 침을 바른 후 내 눈두덩이를 비비기 시작했다.
"어라 안 지워지네."
황당해서 멈춰있던 나를 바라보며 생님이 한 말은 그게 다였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생님은 붉게 물든 나의 눈두덩이가 색조 화장을 해서 그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학생의 얼굴을 비빌 생각을 할까.
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방금 일어난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눈을 꿈벅였다. 그리곤 곧 현실을 자각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빨간 볼이 뻘건 볼이 되도록 벅벅 닦았다.
더한일을 겪어봐서였을까, 신기하게도 이 정도 황당함은 견딜만했다. 자신이 착각했다는 걸 깨닫고 사과할 용기가 없어서 혼잣말을 하며 돌아선 생님이 치타 같아 보였다. 육식 동물이지만 초식동물에게도 당하는 치타 말이다.
학생이 선생님이라는 직업군에 기대치가 없으면 큰 장점이 2가지 있다.
첫 번째는 생님의 침이 눈두덩이에 닿아도 견딜만할 정도로 선생님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좋은 선생님을 보는 눈이 트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담을 한 번도 나눠본 적 없던 생님과 말 대신 침을 나눴던 그날 이후, 혹시 마주치면 생님이 왜 그랬는지 말해 줄까 싶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다시 마주친 그녀는 나를 못 본 척 앞만 보며 복도 끝을 향해 걸어갔다.
사과할 용기가 없어 어물쩍 돌아섰던 생님.
때때로 잘못을 저지를 때면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학교는 이스터 에그처럼 배움을 숨겨두기도 한다.
내가 찾은 이스터 에그는 반면교사였다.
* 이스터 에그(Easter Egg)는 부활절 달걀이라는 뜻이지만 게임에서는 개발자가 프로그램에 숨겨 놓은 메시지나 기능을 뜻한다. 개발자의 장난이라 불리는 이스터 에그는 주로 예상치 못한 특정한 조건에 맞춰 실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