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쉬운 선택

by 오우


믿어 주는 마음

믿음


얼핏 보면 참 좋은 말이 믿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어가 한없이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라고 여긴다.

뇌는 에너지를 아껴 쓰길 원해서 의심하고 분석하는 대신 에너지 사용이 적은 믿음을 선택한다고 한다. 나의 뇌도 그랬다. 믿을만하다고 판단이 끝난 사람에 대해서는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감만을 남겼다.


적당히 지내보고, 이 사람 좋다 싶으면 호감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내 판타지에 넣어서 규격을 맞추려 하진 않았다. 그저 그가 나에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면 그걸로 만족했다.

문제는 그렇게 살다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가진 악의나 거리감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악의야 인연이 끊어지면 끝이지만 거리감은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밝게 웃는 게 예뻐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그 친구는 남의 말에 다정하게 귀 기울이고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마음 한편을 내어주었다. 그렇다고 단짝이 되길 바란 건 아니다. 그저 같은 곳에 함께 소속되어 있는 동안만큼은 서로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자는 마음이었다. 안타깝게도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달랐다.


그녀는 한 번씩 선을 그었다.

"너는 땡땡이랑 더 친하잖아."

여러 명이 모일 때 누군가와 더 친하다는 개념이 딱히 없었기에 어쩐지 마음이 서운했다. 그 말은 그와 내가 친하지 않다는 말처럼 들렸다. 어디까지 친근감을 표시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드는 마음은 호감이었다. 거리감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전한 관계라 여겼다.


안전지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로선 섭섭한 일이, 그녀로선 곤란한 일이 생겼다.

같은 곳에 소속된 어떤 사람이 선 넘는 말을 나에게 했다. 욕하진 않았는데 욕보다 더 나쁜 말이 이런 말이구나 싶었던 말. 그래서 업무 외에 사적인 연락을 하지 말라며 거리를 뒀다. 내가 겪은 일을 소문낼 생각은 없지만 너무 속상해서 누군가에겐 위로받고 싶었다. 나는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내가 겪은 일을 털어놨다. 그녀는 의외로 냉정했다.


"무슨 오해가 있겠지.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가운데 낀 상황의 그녀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게 이해되었지만, 심장은 이성을 따르지 않았다. 마음이 갈라지도록 섭섭했다. 딱히 티는 내지 않았다. 섭섭한 티를 내서 불편해지기 싫었고 내가 상대방을 더 좋아한 것을 뭐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 편이라 믿었던 사람의 객관성은 꽤 상처가 된다. 우습게도 그제야 좋아하는 이들에게 객관적 충고라며 건넸던 말들이 상처를 줬겠구나 싶어졌다.


관계가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사이가 있지만, 관계가 오래될수록 멀어지는 사이도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면 양쪽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거나, 더 좋아하는 쪽이 관계를 잡고 있어야 한다. 내가 정을 준다고 상대방이 되돌려줘야 하는 건 아기에 더 그렇다.


일방적인 믿음의 대가는 믿은 사람이 지는 것이고, 믿음은 서로 나누어 받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여전히진 않다.

주면 받고 싶은 마음이 한 번씩 고개를 든다. 내가 주고 싶어 준 정을 돌려받게 되면 참말로 고맙고 좋으니, 아직 사람을 덥석 믿는 일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