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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예YEEYEE Jan 15. 2021

댓글의 나비효과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첫 번째 이야기. 삶에 필요한 관심

#2. 댓글의 나비효과

: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어느 날 정리 욕구가 솟구쳐, 언제 가입했는지도 모를 카페를 탈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해체한 밴드의 카페를 비롯해 수업자료가 올라오던 곳, 좋아하던 배우, 라이브 공연 일정을 공지하던 클럽의 카페, 팝스타의 자료가 있던 곳 등등. 가입해 놓고 몇 년째 들어가지 않은 곳이 수두룩했다.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 모아놓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

 여길 왜 아직도 가입해 있지? 여긴 언제 가입했지? 기억도 안 나는 데이터 기록들의 향연. 바로 탈퇴 버튼을 찾아 나섰다. 눈에 딱 띄는 곳에 버튼이 보였다. 방탈출처럼 탈퇴 버튼을 숨겨 놓는 요즘과는 다른 몹시 정직한 위치. 클릭 몇 번에 탈퇴가 가능했다.     


 탈퇴 버튼을 향한 마우스 좌클릭의 순간, 문득 그동안 내가 어떤 글을 남겼는지 궁금해졌다. ‘그 글을 어떻게 하나씩 찾아봐. 그냥 탈퇴나 하자’하고 속으로 궁금증을 삼키는데, 내가 쓴 글을 모아 보는 기능이 보였다. 과거의 내가 뭘 하고 다녔나 볼까?


 이게 나라고? 손발이 오글오글 뺨엔 홍조가 발그레

 가입 인사를 시작으로 보이는 이런저런 글.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댓글. 몇십 개의 댓글을 달았는데 제일 많이 쓴 단어는 “우왕”, “오예”, “굳”이었다. 그때의 나는 참 흥이 많았구나. 피식피식 싱거운 웃음이 나오는 댓글을 읽으며 내려가는데, 어두운 분위기의 댓글이 하나 보였다.  

   

 누군가 어떤 일에 불만을 가지고 쓴 글에 공감하는 댓글. 가만히 글을 들여다봤다. 지금의 나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댓글이었다. 마치 화에 불을 지피듯 분노를 끌어올리는 공감과 글쓴이가 두리뭉실하게 느끼는 분노에 대한 이름 붙이기까지. 와 말리는 시누이처럼 옆에서 화를 돋우고 있네? 자신의 화에 공감을 얻은 사람은 더 크게 화를 내고, 애매하게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글을 읽고 함께 화를 내고. 화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공감의 날갯짓이 일으킨 화의 향연

 이성적으로 보면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도 아니었다. “왜 그러나 몰라”하고 뒷담화나 좀 하면 풀릴만한 사소한 일. 그런 일에 공감의 날개를 달아 화를 일으켰었다니. 불현듯 이해할 수 없는 집단적인 화에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가수임을 증명하는 공연을 하고 평가를 받던 한 프로그램. 출연 가수가 진지한 무대를 마치고 분위기를 반전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장난기 가득했던 퍼포먼스. 프로그램이 끝나고 바로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지한 프로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식의 댓글들이 달렸고,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역시 그 일이 핫이슈였다. 나는 소신 있게, 가수가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하는 게 그렇게 지탄받아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모여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진지한 프로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거라며 흥분했다. 반박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사람들의 화에 밀려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화는 광기에 가까웠고 나는 조용히 구석에 찌그러졌다.


 그때부터였다. 공감의 댓글 하나 쉽게 달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건.      


 그날의 공포는 나를 소셜 미디어에 있어 폐쇄적인 사람이 되게 했고, 지금은 극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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