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nungoo Mar 19. 2024

그림쟁이의 남편 - 05

문학이 주도한 여행과 그림

구례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재밌다는 소문에 책을 주문하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평생 책 한 권 제대로 본 적 없는 인간이 난데없는 충동에 휩싸여 책을 주문하더니, 아직 읽지도 않은 소설의 배경 도시에 가보자고 하니 그럴만하다. 예상대로 나는 주문한 책을 전혀 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는 하루 만에 완독하고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아내도 구례에 가보고 싶어 졌으므로 나의 여행지 제안은 절묘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그 책을 보지 않았던 이유는 구례에 대한 기대감을 소설의 분위기로 제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며, 다녀와서 꼭 읽어볼 작정이었음을 밝힌다. 이런 구차한 변명의 신빙성에 관한 논쟁과는 별도로, 한 권의 문학 작품이 우리를 구례로 인도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구례에 가까워질 즈음부터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산이 보인다. 누가 봐도 심상찮은 산이다. 이곳에 살면 매일 저 산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란 부러움이 들게 한 그 산은 바로 지리산이었다. 이곳의 유명한 <목월빵집>의 야외석에서 찬란한 지리산 뷰와 함께하는 빵맛은 그야말로 축복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숙소로 잡은 <구례옥잠>은 게스트하우스인데, 2인실은 내부에 샤워실도 붙어있어서 우리에게는 딱 맞는 곳이었다. 젊은 부부인듯한 커플이 운영하는 <타파커피>의 핸드드립은 기분 좋은 산미와 향긋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내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종이 위의 펜은 가볍고 경쾌하다. 아이패드 미니는 야외에서도 언제든 채색할 수 있어 유용하다.  


<구례옥잠> 아침, 정신 못 차리는 남편 (종이에 만년필)


<타파커피> 카페 안방의 빈티지 의자들 (아이패드 미니, Art set4)


구례를 만끽하는 사이 느닷없이 동네가 컴컴해졌고 문을 연 가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이곳의 매력에 하염없이 빠져들어 시간이 순삭 되는 경험을 한 것이리라. 적어도 밤 10시쯤에나 느낄 수 있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러나 겨우 7시가 조금 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여기가 우리의 도시가 아닌 머나먼 구례였음을 비로소 체감하게 된 것이었다. 구례를 시골이라고 비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소도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자고로 도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말 할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밤 11시는 넘어서야 잠을 잘 텐데 난감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가져오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다녀와서 읽을 계획이었니까 말이다.


우리는 이곳의 주민이 되어야만 했다. 특히 저녁식사 이후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여행객의 마음을 치유해 주던 웅장한 지리산과 소박한 도시의 여유로움은, 밤이 찾아오면서 우리를 떠나는 것이다. 밤의 적막함은 자칫 조금만 지속되면 지겨움으로 돌변하기 일쑤이다. 그러자면 밤의 숙소에서 무언가 할 것이 필요했다. 


낮의 산책 중,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의 <동아서점>을 발견했다. 엘지 서비스센터 직원들도 자사 제품의 내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는 골드스타 에어컨에 대한 자부심을 결코 숨기지 않는 주인 할아버지가 인상적이었으며, 주인장과 닮은 시간의 누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점은 진정한 빈티지함을 갖춘 곳이라 할만했다. 몇 권 없는 소설책들 중에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골랐다. 몇 권 없어서 더 쉽게 고를 수 있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책을 골랐다며 칭찬했다. 


구례 동아서점 앞에서 (종이에 유화)


소설책이 단편집과 장편소설로 구분된다는 사실도 몰랐던 나는 구매한 책이 단편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독서 초보자에게는 단편이 잘 맞는 것이라 여겨졌다. 첫 번째 단편부터 감동과 희열이 몰아쳤다. 이야기의 구성과 감정묘사 등이 절묘한 균형을 갖춘 말 그대로 정말 잘 쓰인 글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읽는 동안 그것이 허구임을 완전히 잊게 만들었고, 어찌 보면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어떤 것이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이토록 절묘한 구성과 감동을 담을 수 있는가 말이다. 다음 단편도 마찬가지였다. 서서히 글이 읽히는 듯했다. 여태껏 이런 즐거운 일을 왜 몰랐는지 의아할 정도였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거기서부터 나의 독서는 시작되었고 동시에 구례의 주민이 될 수 있었다.


문학을 읽고 공감하려 할수록, 그림과도 비슷한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한다. 언어로 풍경을 묘사하고, 사람을 탐구하고, 작품 전체를 구상하기도 한다. 문학작품이 언어로 이루어진 훌륭한 한 폭의 그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특별히 공감을 이룬 문학에서 전달되는 감동은 그림으로부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내가 책을 읽고 아내에게 그 내용을 전달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내는 바쁘니까. 여기서 곧잘 발생하는 사건은, 듣고 있던 아내가 오히려 더 공감하여, 마치 아내가 책을 읽은 듯한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억울한 결과의 원인을 밝히기란 쉽지 않지만, 내게 천부적인 이야기꾼 기질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작가의 이전글 그림쟁이의 남편 - 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