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기자 May 31. 2017

그는 왜 퇴사 후 제주도로 떠났나

퇴사 후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에 도전한 J 씨 이야기

‘떠나온 지금이 너무 좋다.’ J 씨는 최근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잠깐 당신이 J 씨라고 가정해보자. 이제 가진 것은 약간의 돈, 그리고 몇 배로 많은 시간이다. 무엇을 하겠는가? J 씨의 선택은 제주도행이었다. 회사 다니며 읽은 제주살이에 대한 책이 그에게 영감을 줬다고 했다. 가서 무작정 한 달간 살아보기로 했다. 때로는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정처 없이 제주도로 떠난 전 직장인, 현 백수 J 씨는 한 달여간의 제주도 라이프를 통해 무엇을 잃고, 또 무엇을 얻었을까.

 


# 백수 되기 전에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어요?

잡지사에서 사무를 보면서 겸사겸사 촬영 어시스트도 했습니다.


# 퇴사하고 해외여행이 아니라 제주 한 달 살이를 결심한 이유는 뭐예요?

잡지에 신간 소개 코너가 있는데, 많은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세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장르의 책을 보게 되는데, 우연히 제주살이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제목 보고 호기심에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는 뭐 그런 느낌, 딱 그랬어요. 그렇다 보니 다른 나라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제주도 당첨!이었죠. 해외에서 한 달간 살면 참 좋겠지만, 그냥 애국심까지는 아닌데, 제주도가 딱 끌렸어요.

#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어디서 살았어요?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에서 살았어요. 숙소 앞은 바다가 바로 보이는 해안도로였고요. 나름 숙소를 정한 기준이 있었는데요. 교통편이 불편하더라도 시내보다 시외였으면 좋겠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고, 로망인 복층이면 더 좋겠고, 주변도 조용하면 좋겠다였어요. 이것저것 다 조합해서 이곳저곳 살펴보니 어느 순간 월정리와 평대 해변 중간 어디쯤에서 살고 있었죠.  


# 예산은 얼마나 잡았고 실제로 얼마나 들었나요?

블로그와 책자를 살펴봐도 숙소는 보증금 포함 80~100만 원 사이로 잡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00만 원을 잡고 나머지 생활비로 넉넉하게 50~70만 원 잡으면 되지 않을까 해서 비행기 값, 예비비 포함해서 총 180~200만 원을 예산으로 잡았어요. 실제로는 숙소 추가 비용이랑 보증금 포함해서 약 80만 원 들었고요. 비행기 값은 중간에 부산을 오갈 일이 있어서 약 20만 원을 썼어요. 식대 포함 생활비로는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해결하고 점심만 밖에서 해결하자는 계획이었으나, 중간중간 귀찮아서 사 먹기도 했죠. 한 달 살면서 필요한 생필품까지 다 포함해서 오롯이 1인 생활비로 60여만 원을 썼더라고요. 중간에 친구들이 와서 돈 쓴 걸 제외하고 오롯이 혼자만요. 대략 잡은 예산이었는데 그 안에서 알차게 잘 쓴 것 같아요.

# 제주에서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일단 시체놀이 날에는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자고 바다 보면서 음악 듣고 바다 보면서 밥 먹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바다 보면서 책 보고, 바다 보면서 음악 듣고 바다 보면서 과자 주워 먹고 그렇게 보냈어요. 뚜벅이의 하루일 때는 배차시간이 긴 버스를 기다렸어요. 이동시간은 짧게는 15분, 길게는 1시간. 그렇게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무조건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찾아서 바다 보면서 커피 마시고, 바다 보면서 음악 듣고, 바다 사진 찍고, 나 찍어주고, 허기지면 근처 맛집을 찾아 밥 먹고, 다 먹으면 또 바다가 보이는 또 다른 카페를 찾아가 커피 마시고 음악 들으며 그렇게 보냈어요.


# 혼자 있으면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아요? 중간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어요?

제주살이를 결심하고 제가 핸드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디어 금식을 하면서 살아보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음악도 공기계에 다운로드해서 듣고 그랬어요.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엄청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생각난 사람들에게 카톡 하거나 전화하거나 그랬던 거 같아요. 중간에 허리가 너무 아플 때가 두세 번 있었는데, 너무 아픈데 움직여야 하니깐 진짜 부모님 생각나서 집에 가고 싶더라고요. 혼자일 때 아프면 굉장히 서럽고 외롭잖아요. 그럴 때 집에 돌아가고 싶었어요. 아, 그리고 집 김치 먹고 싶을 때! 제가 김치를 좋아하는데, 제주도에선 잘 못 먹었거든요. 엄마 음식 생각날 땐 좀... 하하.

# 백수가 되고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많이 걱정했을 것 같은데,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불안함... 지금도 있어요. 사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잘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온 케이스라 불안함과는 늘 친구처럼 지냈어요. 그런 저를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셨고요. 그런데 걱정하는 만큼 날 응원해주는 사람은 가족이잖아요. 부모님께 하루에 한 번은 꼭 전화로 생사를 알렸죠. 그렇게 나름의 노하우로 불안함을 안고 때론 잊어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쉬다 보면 금방 또 일하고 싶어 진다고 하더라고요. 바쁘지 않다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나요?

아무래도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살이를 시작한 거라 그냥 한 며칠 휴가 받고 그런 느낌이 처음에는 더 컸어요. 금방이라도 회사에 다시 출근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근데 또 금방 자연과 융화되어서 마냥 신나게 즐기고 열심히 놀고 있더라고요. 중간중간 이전 직장 동료들에게서 회사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같이 속 시원하게 욕해줄 수 있어서 오히려 좀 좋았는데 하하... 그리고 바쁘지 않다는 것, 그걸 느끼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서 이런 시간을 가진 거라 정말 며칠 지나니 훌훌 털어버리고 제주도를 온전히 즐기고 있더라고요.

# 제주에서 '무엇'으로 힐링받았어요?

제가 하늘쟁이, 물쟁이, 초록쟁이예요. 하하. 서울에서 일할 때도 스트레스받으면 한강을 자주 찾았어요. 회사에서도 점심시간에 밖에 산책 나가서 하늘 한번 봐주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던 사람이었는데 하늘, 바다, 초록의 자연, 너무나도 좋아하는 걸로 가득 차 있는 제주는 말 그대로 힐링 덩어리였죠. 이곳에서도 취미인 레고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어서 진짜 여러 번 가서 카페 언니랑도 친해지고 고양이랑도 막 놀고 너무너무 좋았어요. 레고를 다 맞춰서 완성된 모습을 보면 와우, 소름과 희열이!(웃음)


# 제일 힘들었던 때는 언제예요?

제주도를 가기 전 세운 계획 중 하나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 보내기'였어요. 사회생활했던 5년 동안 본연의 모습을 많이 잃었더라고요. 정확하게는 잊고 산 거겠죠. 자주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람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보니 쉼 없이 달렸던 5년 동안 참 많이 변해있었더라고요. 그렇게 자아 찾기 시간을 시작하니 정말 마주하기 싫었던 나의 연약함을 보게 된 그때, 그때가 진짜 힘들었어요. 마침 그때 친한 친구들이 제주도에 와서 며칠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꾹꾹 참았던 게 팡 터지면서 이야기하며 좀 털어냈죠. 다시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시간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남은 시간도 잘 이겨내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제주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생 스폿이 있나요? 3군데 정도 꼽는다면요.

참 고르기 힘든데요. 제일 좋았던 건 성산일출봉과 제주 브릭스 카페랑 행원 육상양식단지 앞 해변이요.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있으면서 한 10번 정도는 간 거 같아요. 내 연약함과 마주할 때 많이 찾았던 곳이에요. 일출봉 정상 찍고 계단 의자에 앉아 음악 들으면서 바라 본 그 풍경은 진짜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았거든요. 높은 곳에서 바라본 넓디넓고 탁 트인 광경이 마음까지도 넓게 넓게 탁 트이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인생 스폿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제주 브릭스 카페는 레고 카페인데, 워낙 레고를 좋아해서 지인이 제주도에 왔을 때 데려가 준 곳이에요. 마음에 들어서 그 뒤로도 3-4번은 더 갔어요. 가서 레고도 맞추고 카페 언니랑도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언니가 키우는 고양이랑도 놀고 그렇게 시간 보내다 숙소 오면 괜히 뿌듯했죠. 레고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평면적인 퍼즐 조각을 맞추다가 입체적인 조각들을 맞추고 싶어서 나노 블록을 샀는데, 그 조각조각들이 만나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매력적이고 입체적이라서 좋더라고요. 제주도 오기 전에도 틈틈이 레고 사서 만들고, 하다 보니 많아져서 장식장도 사고 그랬어요. 정말 소중한 취미생활이고 이 장소도 제주생활에서 알게 된 아주 큰 보물이지요.

행원 육상양식단지 앞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월정리에서 해안도로를 끼고 평대-세화 해변으로 넘어갈 때 그리고 그 반대로 갈 때 볼 수 있어요. 낚시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바다 쪽으로 더 들어가면 앉아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는데 일단 뷰가 장난이 아니에요. 나중에 알았는데 일몰 명소래요. 근방에 풍력발전기 여러 개가 있고 하니 그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있겠죠? 바닷가를 걸어서 이동할 때면 늘 보던 곳인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정자에 앉아서 바다 구경 실컷 하고 넘어갔어요. 쉼터 느낌? 좋은 곳을 알게 되어서 뿌듯해요. 다시 가도 꼭 찾으려고요.

뚜벅이 여행자라서 서귀포시 쪽은 차 렌트해온 친구들과 같이 갔었는데 거기도 좋지만 너무 잠깐 있어서 분명 서귀포시 쪽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더 다양한 장소가 나왔을 텐데 그게 좀 아쉽네요.

# 제주에서 가장 좋았던 카페와 해변은 어디였나요?

카페는 다 좋았어요. 해변 주변 카페는 바다 뷰라서 그저 바다 보면서 멍 때리기 좋아하는 저에겐 안성맞춤인 곳이었죠. 숙소에서 가까운 월정리 해변을 자주 갔고 가서 멍 때리기 바빴고, 바다 보기 바빴고, 그냥 이런 글 저런 글 끄적끄적하기 바빴어요. 그래서 저는 월정리가 참 좋습니다(웃음).


#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나 메뉴를 소개해 주세요.

월정리 오빠밥줘를 애용했어요. 포장도 되니 저녁 해 먹기 귀찮을 때 그다음 날 아침까지 생각해서 포장해서 집에 올 때도 많았고, 오빠밥줘에서 나온 메뉴는 다 먹어봤는데 다 맛있어요. 그리고 협재해변 근처 맛집이었던 문쏘! 황게가 들어간 카레인데 매일 딱 60인분의 카레만 판매해요. 친구랑 부랴부랴 전화해서 물어보고 갔었는데, 게도 사장님이 직접 잘라주셔서 먹기 편했고 카레도 맛있어서 한 그릇씩 더 시켜먹고 싶었어요. 디저트는 삼양검은모래해변에서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먹은 토스트가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나더라고요. 신나게 놀다가 먹어서 그랬는지, 너무 배고플 때 먹어서 그랬는지 한 입 먹자마자 음음 거리면서 냠냠했었더랬죠.

# 제주에서 사는 동안 뭘 잃고, 뭘 얻었어요? 한 번쯤 한 군데에서 진득하게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오랫동안 고민했던 거 같아요. 뭘 잃었을까? 뭘 얻었을까? 잃은 걸 되찾을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어서 사실 잃은 거 없이 얻어온 것 같아요. 부모님과 친구들은 다시 너의 생활로 돌아왔을 때 생활해야 할 재정의 일부를 잃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투자한 거기에 전혀 잃었다는 생각은 안 했죠. 얻은 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배운 거? 혼자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순간들이 많았는데,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을 잘 받아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던 분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이전에는 낯선 사람은 잘 경계하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게 두려워 사전에 차단하기도 했는데, 이곳저곳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니 좋더라고요. 덕분에 주변 사람들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또 만나게 되니 참 좋았죠. 하하. 그래서 한 번쯤은 내가 머물던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 집으로 돌아왔는데 요즘의 일상은 어때요?

방통대를 다니고 있던 터라 요즘은 시험대비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집에서는 청소와 빨래, 설거지하면서 지내고요. 아름답게 포장해서 말하자면 일종의 신부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하.

# 퇴사, 혹은 제주 한달살이를 꿈꾸는 이들에게 퇴사 선배이자 제주살이 선배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달살이를 통해서 제가 느낀 건 사람마다 살아내는 삶과 살아내는 모습은 각자 다양하다는 거, 그러기에 각자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가 다 다를 수 있다는 거. 그렇기에 무엇이든 망설이지 말라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내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망설이게 되면 계산하게 되고 결국은 이거 저거 재고 따지다 못하게 되잖아요. 그럼 후회가 남고요. 지금 나는 이게 너무 하고 싶다. 그럼 꼭 합시다. 그게 실패든 성공이든 뭐든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저도 그 부분을 가장 많이 배웠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저 머리로만 알던 부분을 몸으로 체험했고, 마음으로 느끼니깐 심장이 두근두근한 게 좋더라고요. 현실을 직시했을 땐 제가 한 말이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요.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데 바보 같은 삶, 똑똑한 삶의 기준을 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있지? 왜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했지? 결국 내가 살아내야 하는, 내 삶인데.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행복하고 내가 기쁘면 되는 것을 말이죠.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지 말고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도록 우리 같이 힘내 봅시다.  


*더욱 자세한 제주도 라이프와 팁은 J 씨가 연재 중인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happyjk8


구석구석 구기자

웹사이트 koopost.com 
브런치 brunch.co.kr/@koopost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koopost
인스타그램 #흑백스타그램 www.instagram.com/sleepingkoo 
인스타그램 #쿠스타그램 www.instagram.com/koopost
이메일 koo@koopost.com / hawkeye@donga.com


매거진의 이전글 구기자의 CC타임: 오늘 뭐 읽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