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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Dec 30. 2017

영화 '신과 함께'는 왜 웹툰과 달랐는데 성공했을까?

한국 웹툰의 가능성과 2차 창작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쓱쓱 내려가며 손쉽게 볼 수 있는 웹툰은 큰 인기다. 특히 한국에서 그 위력이 대단하다. 아시아권에서 ‘만화의 강국’을 꼽으라면 일본을 떠올리지만 출판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웹툰만을 두고 본다면 한국이 ‘웹툰의 강국’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 외에도 레진코믹스, 탑툰, 짬툰 등 웹툰을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플랫폼이 수십여 곳에 이른다. 웹툰은 그 자체로도 인기이지만 더 나아가 드라마와 영화, 공연으로도 제작되며 OSMU(One Source Multi Use)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 ‘치즈 인 더 트랩’ ‘운빨 로맨스’ ‘동네변호사 조들호’ 등은 모두 웹툰이 원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미생’의 원작자인 윤태호의 웹툰으로 만든 영화 ‘내부자들’이나 최종훈 작가의 웹툰으로 만든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은 각각 관객수 700만 명을 돌파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신과 함께’는 최근 500만 명을 돌파했고, 앞서 개봉한 양우석 감독의 영화 '강철비'는 본인이 원작 웹툰의 스토리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도 영화화 작업 중이다. 2016년 tvN 드라마로 만들어져 사랑받은 순끼 작가의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은 조만간 영화로도 제작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김풍과 심윤수 작가의 웹툰 ‘찌질의 역사’는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웹툰이 인기이고, 어떤 작품이 2차 창작물로 재탄생할까? 꾸준히 사랑받는 건 일상물과 능력자물이다.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어쿠스틱 라이프’처럼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작품 외에도 ‘오무라이스 잼잼’, ‘역전! 야매요리’ 같은 음식 웹툰이 소위 ‘먹방’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웹툰 ‘트레이스’, ‘노블레스’, ‘신의 탑’ 등의 특이한 능력자가 등장하는 작품은 젊은 층에게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2차 창작물로 재탄생하는 웹툰은 이보다는 더 공감의 폭이 넓은 작품들이다. 우정사업본부가 2017년 2월 10일 발행한 한국을 대표하는 웹툰 기념우표에 실린 작품을 보면 어떤 게 ‘그런 작품’인지 알 수 있다. 이번에 발행한 우표에는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윤태호의 ‘미생’, 조석의 ‘마음의 소리’가 실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폐지 줍는 할머니와 우유 배달하는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고,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신과 함께’는 한국 신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인기를 얻었다. ‘미생’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호평받았으며, ‘마음의 소리’는 유쾌한 가족 이야기를 희화화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 모두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다.

시장은 웹툰이 갖는 확장성과 부가 수익 창출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웹툰, 1조 원 시장을 꿈꾸다’ 보고서를 통해 웹툰이 창출하는 총 시장 규모가 2015년 4200억 원에서 2018년 88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1차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2950억 원에서 2018년 약 5097억 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봤으나, 2차 활용과 글로벌에서 창출되는 각종 부가가치 및 해외 수출까지 모두 고려한 총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4200억 원에서 2018년 약 8800억 원까지 커지리라고 본 것이다. 이 보고서는 웹툰의 진짜 가치가 2차 활용에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하루 100만 건의 클릭수와 50만 명의 고정 독자를 확보한 웹툰 ‘미생’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성공을 거둔다면 서적 판매는 물론이고 캐릭터 사무용품, 음료, 바둑학원 및 바둑용품 등의 매출 증대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기 웹툰을 가져다가 만든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례로 내놓는 작품마다 히트시킨 강풀의 웹툰은 대부분이 공연과 영화, 심지어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누적 조회수 5억 뷰 이상인 기안84의 웹툰 ‘패션왕’은 영화화되며 인기 배우 주원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화제가 됐으나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어떤 웹툰은 되고 어떤 웹툰은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공통점은 ‘지나치게 원작에 충실해서’다.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이해 없이 ‘너무 만화처럼 만들어서’라고도 할 수 있다. OCN 드라마 ‘닥터 프로스트’는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위해 배우 송창의가 백발로 변신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극에 몰입을 떨어뜨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SBS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와 KBS2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모두 뱀파이어가 주인공인 작품이었으나 지나치게 만화적인 전개 때문에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데에 실패했다.

캐릭터와 설정만 따와서 작품을 재창조하다시피 하면 원작 팬들이 반발하고, 원작을 지나치게 따랐다가는 일반 팬들마저 외면할 수도 있다. 2차 창작자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심 끝에 만든 작품이 토끼 한 마리라도 잡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웹툰 ‘내부자들’과 ‘치즈 인 더 트랩’, 그리고 최근 개봉한 '신과 함께'의 사례는 2차 창작자들이 웹툰을 가지고 작업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영화 ‘내부자들’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윤태호 작가의 미완결 웹툰을 영화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웹툰은 한국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밝혀내는 다소 어두운 작품이었지만, 영화는 보다 경쾌한 스타일의 범죄 드라마물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웹툰 속 이상업 기자는 영화 속 우장훈 검사가 됐다. 윤태호 작가는 “우민호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이 덧붙여지면서 원안보다 스피디해지고 패셔너블해졌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은 캐스팅 단계부터 주인공 박해진이 ‘만화책을 찢고 나온 것 같다’며 호평을 받았으나 에피소드 각색 문제, 원작자와의 소통 문제 등으로 매회 논란을 빚었다. 원작자인 순끼는 블로그를 통해 “원작과 전혀 다른 느낌의 드라마 제작을 희망했으나 기사는 ‘원작 충실’이라고 나왔다. 드라마가 제작되는 동안 (자신에게) 연락 한 통 없었다. 원작과 다른 결말을 요구했는데 내용은 물론 연출마저 흡사했다”라고 비판했다. '신과 함께'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원작 웹툰에서 핵심 인물이었던 진기한이 영화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 "진기한은 1편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영화는 프랜차이즈로 가야 하는데 진기한이 아닌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개봉한 '신과 함께'의 부제는 '죄와 벌', 이후 개봉을 앞둔 2편의 부제는 '인과 연'이다. 1편의 흥행 덕에 미리 찍어둔 2편도 빛을 볼 수 있게 됐다.

한편 웹툰 시장이 커지며 출판만화시장에서 인기였던 작가들도 웹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1997년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등을 히트시킨 만화가 천계영은 요즘 독자에게는 웹툰 ‘드레스 코드’, ‘좋아하면 울리는’의 작가로 더 유명하다. 넷플릭스는 천계영이 다음에 연재 중인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첫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한다고 올해 초 발표했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감정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2018년 전 세계 약 190여 개국에 방영될 예정이다.

웹툰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만화 속 세상은 점차 진짜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2차 창작자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2차 창작자는 원작에 대한 팬심과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냉철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나가야만 한다. 또 다른 성공작은 그런 과정에서 탄생하게 된다.


*영문 버전은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thedissolve.kr/korean-web-comics-from-phone-to-big-sc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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