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작 메이커' 임성한 작가가 은퇴 후 3년 만에 건강서를 냈다
"암세포들은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2013년 MBC TV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등장한 이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문제의 대사를 남기고 은퇴한 임성한 작가가 그 대사를 제목으로 딴 책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기자로 살다 보면 하루에도 수백 건의 보도자료를 메일로 받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에 '임성한 작가,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 발간! ‘나를 살리고, 지인을 보살핀’ 임성한만의 ‘건강 레시피’'라는 제목의 메일에 눈길이 갔습니다.
임성한? 그 임성한 작가? 그가 드라마 작법서도 작품도 아닌 건강 레시피 북으로 돌아온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원래도 매 작품마다 슈퍼푸드 예찬론을 펼치던 작가라 건강과 음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책까지 쓸 줄은 몰랐거든요.
과거에도 제가 기사에 임 작가의 드라마 특징 중 하나로 저 슈퍼푸드 예찬론에 대해 다룬 적이 있지요.
'임 작가의 작품에는 꼭 한 명씩 ‘네이버 지식인’ 내지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유형의 캐릭터가 나온다. 요리 이야기를 할 때 특히 그렇다. 드라마 ‘신기생뎐’에서는 단사란이 음식의 조리 과정과 영양, 몸에 어떻게 좋은지를 장시간 할애해 설명했다. 반찬 하나를 집어먹어도 어떤 식으로 요리해야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http://woman.donga.com/Library/3/all/12/146140/1
임 작가는 1997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에 ‘두 여인’이 당선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아현동 마님' '보석비빔밥' '신기생 뎐' '오로라공주' '압구정 백야' 등의 TV 드라마 작품을 썼는데요. 이 책에 쓰인 작가의 말을 한 번 읽어 보시죠. (이 포스팅에서 색이 다른 부분은 보도자료와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픈 바램이 있어 다양한 노력들을 하지만 올바른 건강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한의사 양의사들의 주장이 다르고 양의사 간에도 건강 이론에 차이가 있으며, TV 건강 프로에서 <<특정한 식품들을>> 개인의 체질과 증상을 무시한 채, 꾸준히 섭취만 하면 병도 고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내용이 넘치는데, 그런 수퍼 푸드 한 두 가지를 열심히 섭취한다고 절대 건강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영양 불균형과 간. 신장의 무리로 몸 상태는 더 나빠질 수 있다.
임 작가는 드라마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압구정 백야'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낼 동안 스트레스로 각종 병에 시달렸다고 이 책에서 밝혔습니다. 책에는 그 고통을 자신만의 레시피로 이겨낸 과정이 담겼습니다. 다이어트부터 탈모, 두통, 변비, 불면증, 위장병, 과민 대장 증후군, 갱년기 증상, 빈혈, 요통, 감기, 내향성 발톱, 고혈압, 당뇨, 통풍, 암까지 다양한 질병에 대한 정보와 스트레스, 노화,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드라마를 쓸 때 건강 문제가 제일 중요했다. 아파서 원고를 못 쓰면 방송 펑크고 방송 펑크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어떤 일이 있어도 아프면 안 되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생각도 잘 떠오르고 제때제때 대본을 댈 수 있어서 마치 글 쓰는 기계처럼 수도승 같은 규칙적인 생활을 흐트러뜨릴 수 없었다. 그렇게 드라마가 끝나면 영화도 많이 봐야 하고 작품성 있는 소설도 읽지만, 내 경우 온갖 건강 서적을 섭렵해가며 건강 공부도 병행했다. 내 몸을 마루타 삼아 이 방법 저 방법, 하다못해 쑥뜸을 살에 직접 뜨기까지 했고, 피 뽑는 사혈, 부황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지금의 이 정도 건강 지식, 이치를 일찌감치 삼십 대부터 알았다면 지금보다 내 상태는 훨씬 나았을 거고, 무엇보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게 하지 않았다.
임 작가는 여전히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주장합니다. 책 제목에도 쓴 것처럼 말이지요. 2013년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임 작가의 일일극 ‘오로라 공주’ 118회에 등장했던 설희의 대사를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지영 : 열심히 치료받아요. 힘들겠지만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설희 : 치료 안 받아요. 인명은 재천이라잖아요. 죽을 운명이면 치료받아도 죽어요.
지영 : 안 받으면 6개월 못 넘긴다면서요.
설희 : 암세포들은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텐데... 원인이 있겠죠. 이 세상 잘난 사람만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듯이... 같이 지내보려고요.
방송 나가고 비난이 거셌다. 인터넷에 ‘암세포도 생명’을 검색해 보면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도 고스란하다. 비난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임 작가는 “내용을 쓸 때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한다. 임 작가는 “부정적으로 쏟아질 기사를 생각하며 바꿀까, 어쩔까 잠시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대사를 살렸다. 오랫동안의 ‘취재와 공부’를 부정해선 안 됐으니까. 임 작가는 설희의 말 그대로 암세포가 생긴 일상의 ‘원인’을 반추하고, 자신의 몸에게 스스로 사과하고, 또 ‘같이 지내면서’ 다스려갈 것을 권유한다. 물론 병원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과 ‘레시피’를 통해 병을 예방하고 치유해나가자는 임 작가의 소신에서 암도 예외는 아니다.
임 작가가 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드라마 ‘압구정 백야’ 준비 때 극중 유명 화랑 대표, 화가, 화가 조수로 설정된 직업들 때문에 미술 전반에 관한 취재가 필요했고 이때 떠오른 사람이 신정아 였다. 어렵게 전화번호를 수소문 해 약속 장소에 나갔다. TV에서 봤을 때보다 늘씬한 키에 튼실 다부진 체형의 세련녀였는데, 외모만 세련이지 입맛은 초딩이었다. 취재가 한번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 몇 번 만나다가 한번은 저녁 먹으러 그 친구 차로 이동하는데, 차 안에 온갖 과자가 한가득이었다. 내가 놀라서 먹냐고 물었더니 매일 먹는단다. 끊어야 한다니까 바로 돌아온 대답이 ‘절대 못 끊죠.’였다. 근데 결국 끊었다. 그 좋아하는 과자도 끊고 커피도 어쩌다 한 번씩 마시고(찬 음료도 절제), 신경 써서 소고기도 한 번씩 먹어주고... 그 결과, 튼실하고 다부졌던 체형은 바로 런웨이 서도 손색없을 만큼 여리여리 모델 몸매로 바뀌었다. _19쪽 '01. 다이어트'에서
더운 사막에 나무가 못 자라듯이 두피가 더우면 탈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끼 꼬박 먹는, 밥 위주의 식사는, 밥이 결국 포도당으로 바뀌는데 몸에 필요한 만큼 쓰고 남은 당은 결국 지방 찌꺼기가 되어 어떤 사람에겐(체질에 따라) 탈모를, 누구에겐 비만을, 어떤 이에겐 염증 반응을, 당뇨병을 선사한다. _44쪽, '02. 탈모'에서
종양이나 뇌경색 같은 뇌에 문제가 있거나 고혈압 등의 병도 아닌데 머리가 아픈 이유는, 바로 위장의 기능이 안 좋아져서이다. 그리고 위장이 일시적으로 안 좋아지는 이유는 수분 섭취와 과식 때문이며, 내 경우 아주 오래 전부터 국 없이 식사를 한다. _58쪽, '03. 두통'에서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드라마 절필 선언을 하고 매니저 A를 채용했다. A는 외국 유학 중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힘든 생활로 수면 리듬이 깨져 수면제 아니면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심각한 수면제 부작용을 얘기해주고 끊어보라 했더니 '그럼 저 죽어요' 하며 절대 못 끊는다 했다. _83쪽, '05. 불면증'에서
가끔은 나도 산사에서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체험하는 발우공양 템플스테이에 참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먹은 그릇에 물까지 부어 헹궈 마시면 속 불편할 것 같고 영 자신 없어 아직 신청을 못하고 있다. _93쪽, '06. 위궤양·위장병'에서
암세포가 생명이 아닌 죽은 거면, 이미 암이 아니다. _128쪽, '08. 암'에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니 '아이스 라떼'니, 아이스란 말은 잊자. 열이 올라온다. _137쪽, '09. 갱년기 증상'에서
식구들이나 지인들이 집에 오면 '무엇을, 언제, 어느 정도 먹었나'를 묻고 혈당 측정을 해주는데, 대부분 자기는 당뇨가 없다고, 검진에서 정상으로 나왔다고 자신 있게 손가락들을 내밀지만, 몇 명 빼놓고는 대부분 이미 경계성 당뇨 예비환자였다. _163쪽, '11. 당뇨병'에서
'내가 드라마 쓸 때만 기자들 투표해서 '최악의 드라마'로 뽑아? 그럼 재밌다고 본 그 많은 시청자들 다 최악의 수준 시청자란 말이야?' 이런 식으로 따지고 억울해하며 분함으로 살았다면, 아마 나는 진작에 화병에 걸렸을 거지만 아직까지 아프고 불편함 없이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아직까지는. 어떤 문제가 닥쳐 힘들어하고 하소연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분별하지 말고 그냥 딱 받아들여보라'고 조언한다. _299쪽, '20. 스트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