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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Apr 05. 2018

그가 퇴근 후에 벽을 타고 방을 탈출하는 이유(1)

'방탈출 게임'&'실내 클라이밍' 즐기는 김성규 씨의 이색 취미 탐구생활

'방 탈출 게임'으로 머리 쓰고 '클라이밍'으로 몸 쓰는 남자. 직장인 김성규 씨의 퇴근 후 삶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이색적인 취미를, 그것도 꾸준히 즐기고 있는 그에게 특별히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간지 기자로 오랫동안 일한 그에게는 사실 직업만 가지고도 질문할 거리가 산더미이지만, 이번 인터뷰의 타깃과 목적성은 확실하다. 오직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만. 술 마시는 것 빼곤 별다른 취미가 없는 직장인이나 색다른 취미를 찾고 있는 직장인에게 '이런 재미있는 놀이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물론,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다. 새로운 취미를 찾고 있었다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남들 눈치를 남보다는 조금 덜 보는 30대 중반 독거 기자입니다. 하고 싶은 건 웬만큼 하고 살아온 거 같네요(웃음).


방탈출 게임을 함께 한 멤버들과. 제일 오른쪽이 김성규 씨다.

# 취미가 굉장히 다양해요. 운동도 많이 하죠. 요즘에는 방탈출 게임과 실내 클라이밍에 푹 빠졌다고 들었어요. 각각 언제부터 시작했고 일주일에 얼마나 하나요. 
둘 다 시작한 게 비슷한데 클라이밍은 지난해 8월부터, 방탈출은 10월 정도예요. 클라이밍은 주중 저녁에는 회식이나 약속이 없으면 가고, 주말 낮에도 종종 갑니다. 그럼 일주일에 2, 3번은 가는 거 같아요.
방탈출은 동호회 사람들하고 약속 잡아서 가는 편인데, 직업상 평일에는 회사랑 연락이 닿아 있어야 하는 편이라, 아무래도 주말에 많이 하게 되네요. 그런데 보통 한 번 갈 때 2연방(방탈출 2개를 연속으로 하는 것), 3연방씩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지금은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편차가 크긴 하지만 평균 일주일에 3개 안팎으로 즐기게 되네요. 


# 먼저 방탈출 게임에 대해서 물어볼게요. 저는 방탈출 게임을 취재 때문에 처음 해봤는데요. 처음 해본 건 언제였나요. 누구랑 했고 어떤 방이었는지 기억나나요.

2016년 언젠가에... 엑스와... 쿨럭. 신림 esc의 ‘프로젝트 Z’라는 테마였어요. 지구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백신을 찾아가는... 그런 스토리였죠.


# 처음에 방 탈출에 성공했나요?
성공하긴 했는데 솔직히 시간을 아주 약간 넘겼어요.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이 봐주셨는지 탈출한 걸로 해주시더라고요. 그땐 처음 해본 거라 힌트 아낀다고 안 풀리는 첫 문제 붙들고 20분도 넘게 끙끙댔던 거 같은데, 결국 힌트 쓰고 넘어가니 그 후로는 술술 풀렸던 거 같네요. 시간이 촉박해서 ‘덩줄’ 타는 기분을 느끼다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ㅎㅎ 추가로, 제가 완전 문과생이라... 당시 이공계스러운 문제들이 좀 많았는데 엑스가 공대였던지라 원소주기율표를 달달 외워서 문제 푸는 걸 보고는 존경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 방탈출 게임의 매력은 뭔가요.
원래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퍼즐 같은 장르를 좋아해요. (잘하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문제적 남자’를 애청하고 있기도 하고요. 모바일 게임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모뉴먼트 밸리’라는 퍼즐 게임이죠. 기본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숨겨져 있는 해답을 찾아내는 데에서 쾌감을 느껴요. 셜록 홈스가 인기 있는 것도 사람들이 그런 데서 매력을 느끼기 때문 아니겠어요?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들어가 오로지 그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마치 여행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요. 방에 들어갈 때 눈을 가리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솔직히 방탈출 게임은 호불호가 갈리는지라 해본 뒤에도 재미없다고 하시는 분도 있긴 하지만, 눈 가리고 내가 모르는 어떤 곳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설레 하는 건 다들 비슷하더라고요.
여기에 더해 요즘에는 스토리는 물론이고 인테리어나 디자인, 신기한 장치에도 공을 많이 들인 방탈출 게임 테마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 이야기나 공간 자체를 즐기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거예요.


# 방탈출 게임이 솔직히 입장료가 저렴하진 않잖아요. 한 번에 얼마 정도 쓰나요. 
소소한 할인 같은 게 있지만 혼자 가는 게 아니라면 대략 한 번에 2만 원 정도라고 보면 될 거 같아요. 다만 혼자 오는 사람(혼방)을 위한 가격대의 테마도 있고 75분짜리 대형 테마는 약간 더 비싸다는 걸 알아두시면 될 거 같네요. 자주 하기에 저렴하다고 볼 수 없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특별한 체험이라는 점과 저처럼 많이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일단 한 번 도전해보는 건 크게 부담은 안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주 만나는 탈출 크루나 패밀리가 있나요.
테마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3~4명이 적정하더라고요. 저는 아까 말한 첫 방탈출 외에는 하고 싶어도 마땅히 같이 할 사람이 없어 못하고 있다가 지난해 10월쯤 친구가 동호회를 소개해줘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출신학교 사람들이 모인 방탈출 동호회인데, 워낙 1등 기록을 갈아치우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 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더라고요.


방을 '빠르게' '잘' 탈출하는 비결이 궁금해요. 방에 들어가면 어디부터 살펴봐야 승산이 있을까요?
전 동호회에서 아직도 뉴비인지라... 그리고 제가 잘한다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학부나 대학원생분들의 명석한 두뇌 덕분에 잘 탈출할 수 있었어요. 나도 한 때는 머리 잘 돌아갔는데... 이런 걸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하하.
곁에서 본 경험으로는, 일단 관찰력이 중요해요. 숨겨진 단서만 찾으면 바로 풀릴 문제를 문제만 보고 끙끙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숨겨진 공간까지 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리고 단서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거꾸로 또는 뒤집어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보태자면 문제가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상식 수준에서 나오는 게 많거든요. 디지털 숫자 표시, 태양계 행성 이름, 시계와 달력, 별자리, 원주율(파이), 논리 문제, 간단한 영어 등등 상식에 관심을 많이 두면 좋을 거 같아요. 물론 막상 문제를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센스’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퀴즈를 많이 풀어보는 게 중요할 거 같네요. 문제 유형 파악 차원에서요. 


"낯선 그녀가 나를 남편이라 부른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정신을 잃은 당신. 
정신을 차린 당신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당신을 지켜보는 상냥한 그녀.
"여보, 정신이 좀 드세요?"
그런데 이 낯선 느낌과 불안한 감정은 뭐지? 
약을 사 오겠다며 나간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내야 한다!


인상적이었던 테마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금까지 50개가 조금 넘는 방탈출 게임을 해봤는데요. 동호회에는 300개 넘게 하신 분들도 있고 지방까지 원정 가시는 분들도 계셔서...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인상 깊었던 테마들이 참 많기는 한데, 하나만 꼽자면 비트포비아 신논현점의 ‘낯선 가족’을 꼽고 싶네요.
사실 이건 제가 탈출을 실패한 테마예요. 어렵기로 소문난 곳이긴 한데, 난이도 때문이라기보다는 중간에 나오는 문제(트릭) 하나가 그때까지 저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충격적인’ 것이었거든요. 지금은 알고 나니까 괜찮지만 완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어서 잊을 수가 없네요.


# 방탈출 게임을 즐기기에 적절한 조합은 무엇일까요. 커플끼리 들어갔다가 탈출 못 하면 싸우고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관계보다도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두뇌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할 거 같네요. 잘하는 것과 별개로 일단 관심이 있어야 하니까요. 사실 제가 속한 동호회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인데 만나서 방탈출 잘만 하고 나오거든요. 커플끼리 싸운다는 건...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까지 포용할 수 있다면 싸울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먼 산)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코스가 있나요.
가장 인정받는 체인은 서울이스케이프룸이나 비트포비아, 코드케이, 룸익스케이프 정도가 있을 거 같네요. 하지만 저희들끼리 하는 말로 ‘꽃길’이라 부르는 웰메이드 테마는 정말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구애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유명 체인에 있는 테마 중에서도 이상한 문제가 많은 방도 있고요.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로 ‘오프라인 방탈출(오방)’이라는 곳이 있으니 이곳의 후기를 참조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공테(공포테마)를 싫어하시는 분도 많으니 빼고, 또 너무 어려운 것도 빼고 꼽자면... 합정 디코더의 ‘여자방(introverted thief)’, 강남 키이스케이프 ‘월야애담’, 신촌 메종드시크릿 ‘크레이지 베어’를 택할게요. 첫 번째는 뉴미디어아트 기획자가 참여한 만큼 세련된 공간에서 자물쇠 하나 없이 신기한 장치들을 경험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아름다운 한옥에서 펼쳐지는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셋째는 귀여운 곰돌이들이 클럽에서 펼치는 다소 엽기적인(?) 사랑싸움을 소재로 해서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난이도도 적당하고요.


# 이 글을 읽고 방탈출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거는 일단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맛은 봐야 그게 정말 맛난 건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다만 혼자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 만큼, 주변의 비슷한 친구들을 잘 꼬드겨서 꼭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이후에도 다양한 방탈출 게임을 함께 즐기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 제 인스타그램(@bismachia)으로 연락 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bismachia/


▶▶▶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koopost/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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