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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May 21. 2017

개발자의 개발환경

사치 아니에요

CTO로 합류하기로 한 팀원이 어제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본격적으로 다음 주부턴 우리 제품 개발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내가 퇴사하는 거랑 다른 사람 퇴사(시키는) 거랑은 느낌이 좀 달랐다. 흠좀무.


공동창업자/CTO분을 구하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게 있었다. 앞으로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될 개발자분들에겐 '다른 건 몰라도 개발환경은 끝내준다.'라는 말을 듣게 하자라고. 이게 꼭 개발자에게 국한된 말일진 모르겠다.


배경은, 이전 직장에서 개발도 아니고 '기술영업' 일을 할 때, 꽤 괜찮은 모니터 1대를 제공받았다. 엔지니어로 일할 때 워낙 듀얼 모니터에 익숙했던 나는, 모니터 1대를 더 줄 수 있냐고 회사에 물었고, 회사에선 내규에 의해서 1대만 제공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꾸진 모니터 1대를 그냥 쓰라고 했다. 그래서 색온도가 서로 다른 듀얼 모니터를 3년간 썼다. '굉장히' 불편했다.


좋은 듀얼 모니터 2대가 얼마나 일의 performance를 내는지 management 사람들은 잘 모르나 보다. 정말 모니터 요즘 괜찮은 건 정확히 20만 원인데, 20만 원을 아끼려고 (물론 20만 원 곱하기 직원 수이겠지) 회사의 2억 원짜리 계약을 따오고 못 따오고 가 걸려있는지를 모른다. 내가 나중에 회사를 운영할 때는 반드시 업무효율을 위해 좋은 모니터와 듀얼 모니터 홍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처: kaskus.co.id


그래서 이게 본질이 아닐진 몰라도, 합류하는 팀원에겐 본인이 원하는 노트북과 키보드, 그리고 의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전엔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개발자 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사무실 의자이며, 가장 많이 보는 것은 '모니터', 그리고 가장 많이 만지는 것은 '마우스'와 '키보드다. 즉, 굳이 본인이 필요하지 않다면 상관없지만, 이런 매일 일상에 사용되는 부분들에 대해선 나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쓰지도 않으면서 비싼 걸 사면 '사치'라고 볼 수 있지만, 매일 사용하는 기기에 대한 투자는 나름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사막의 벤츠라고 불리우는 랜드로버는 깨끗한 아스팔트 도로에서가 아닌, 이렇게 오프로드에서 타라고 만든 것이다

우리의 건강과 직면되는 '숙면'을 위해서 좋은 배게를 쓰는 것과 마차가지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좋은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키보드와 컴퓨터, 모니터만큼은 좋은 것을 제공하고 싶었다. (물론 저는 그중, 컴퓨터 욕심은 크게 없어서 그냥 저렴한 노트북에 우분투를 쓰고 있습니다. 대신 메모리는 4GB->8GB->12GB 순차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고 램 가격이 더 내려가면 16GB로의 업그레이드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게 다 무시무시한 구글 크롬의 v8엔진 때문 아니겠어요? 사랑합니다. 크롬)


물론 멤브레인이나 펜타그래프 키보드를 쓴다고 해서 업무효율이 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분들이나 심지어 기술영업을 했던 나조차도 3년 동안 email만 하루에 50통 넘게 써야 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회사에서 준 Dell 번들 키보드로 1년간 일하다가 손가락 관절이 나갈 뻔했다.


나도 몰랐는데 선인상가에 키보드 샵이 있다고 해서 CTO님과 함께 용산에 갔다. 개발자들은 마음이 울적할 땐 용산의 키보드 타 건샵에 들러 키보드를 타건을 하면 치유를 받는다고 한다. (응??)


우리 프로젝트를 도와주실 CTO님 친구분까지 셋이 모여 하루 종일 프로그래밍 이야기를 하다가 용산에 들려 키보드를 타건하러 간다. 정말 아침에 조기 축구하러 가는 것을 여자들이 이해 못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광경이지만, 나도 좀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용산 선인상가에 가니 정말 이렇게 키보드만 파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놀라움) 우리 일행들과 나 조차도 이 공간에 있으면서 키보드를 눌러보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또 놀랐다. 딸깍 딸깍 딸깍 찰칵찰칵 여자들이 옷가게에서 행복해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부턴 업무 효율이고 뭐고 이런 건 생각이 안 든다. 그냥 취향의 문제일 뿐.


10여 분여 고민하다가 우리 CTO님은 아래의 리얼포스 토프레 차등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의 키보드로 고르셨다. 검은색을 원하셨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저 푸르딩딩한 키캡 색깔이 부러웠다.

가격은 ㄷ ㄷ ㄷ 합니다


꼭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많이 쓰는 분들에게 다른 키보드 사용경험이 없다면, 꼭 추천드린다. 개인적으론 글을 쓰고 싶지 않다가도,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기 위해서라도 글을 쓴 적도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동안만큼은 행복하다. 그런데 글 퇴고할 때는 꼭 행복하지많은 않다. 마치 코드 디버깅하듯, 내 글의 말도 안 되는 전개와 문장 구성을 보면서 너무나도 창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글 역시 LEAN 개발 방법론을 따르는 이유로 일단 먼저 '발행' 이후 고쳐나가고 있다. (내일 자고 일어나면 이 문장은 지워버릴지도...)


어쨌든 글을 쓰든, 코딩을 하든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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