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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Apr 13. 2016

서민의 포르셰(Porsche), GTI

VW GTI (5세대)를 얻기까지

나의 첫 차는 97년식 도요타 캠리였다. 열심히 피자 배달해서 약 2백만 원에 구매한 차량이었는 데 있을 건 다 있었다. (미국에서 차량 내부 에어컨, 자동 기어, 파워 윈도, CD 플레이어 등은 모두 추가로 구매해야 했던 옵션사항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캠리는 에어컨(Air Conditioner)이 없었다. 무더운 여름엔 차량으로 피자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에어컨이 없어 피자가 식는 일은 없었다. 다만,  마치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곤 했다. 13만 마일이 넘어간 차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씽씽 잘 달렸다.

97년식 캠리

하루는 비 오는 날, 사촌 동생이 차를 빌려가고 사고를 내서 사랑하던 캠리가 폐차되었다. 그 날 나는 너무 속상해서 잠을 잘 못 잤다.

차를 다시 구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즈음, 난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남자들의 로망? 바로 "이니셜 D"였다.

만화에서 주인공 타쿠미는 도요타의 오래된 트레노 86이라는 수동기어 차량을 타고 다닌다. (다운힐에서 고급 스포트카들을 모두 고개 숙이게 만드는..) 이때부터 나는 왠지 모르게, 남자는 '수동'이지, 하며 중고차 시장에서 수동을 고르게 되었다.


나는 돈이 없으니 가격이 저렴한 현대의 이전 세대 소나타를 한 스위스 천체물리학자에게 구매하게 되었다. (미국에선 생각보다 직거래가 흔하다.)

대략 이 차량

당시 수동변속기라는 이유로 300불을 깎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 차도 약 2년여간 잘 타고 다니다가 이번엔 내가 폐차를 시켜버렸다. ㅜㅜ 다행히 재판을 거쳐 사고의 원인이 내가 아닌 제3자로 밝혀져, 나는 내 차의 중고값을 뛰어넘는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1/3은 변호사가 가져감) 생각지 못했던  현금을 손에 쥐게 된 나는 언제나 나의 드림카였던 폭스바겐의 골프 GTI 구매를 고민했다. (물론 혼다의 civic 스포츠 버전인 si도 고민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GTI를 고민해볼 기회도 없을 거라 생각되어 60개월 할부로 질렀다. (이후 60개월 할부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이었는지는 할부 3년째부터 깨달았다..) 어쨌든 당시엔 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GTI를 타고 집에 데려온 날, 난 다른 이유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너무 설레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모두가 잠든 밤에 이리저리 만져보고 시트를 움직여 보곤 했다. 차는 수동기어에 옵션이 '전무'했던 차량이었다. 심지어 내부 시트도 가죽이 아니었다. (다행히 ABS와 CD플레이어는 있었다.) 클러스터의 파란색 배경색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날 밤 차 안에서 잠을 청할 뻔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독일차의 잦은 전자장비 고장의 이슈가 있었지만, 돌이켜보건대 그건 많은 전자장치 옵션이 있던 고급 아우디 차량이 그랬고, 거의 전자장비가 탑재되지 않은듯한,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해서 만든 골프 GTI는 한 번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약 9년간)  그 전에 구형 소나타를 타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뭐랄까, 놀라울 정도로 수동 변속에 대한 반응이 조밀 조밀하고, 빠른 반응이 너무 좋았다. 내 차는 200마력인데 요즘 나오는 한국 차량의 터보 엔진은 200마력을 훌쩍 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토크 때문인지, GTI의 가속에서는 뒤에서 착 받혀주는 느낌? 특히 코너링에서는 바깥으로 밀리지 않고 안쪽으로 꽉 차는 느낌으로 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느낌은 '핸들링'이다. 스티어링 휠(steering wheel)은 단단하고 꽉 조여있지만, 반응이 민첩하다. 그리고 '안정적'이다. 고속도로에서 100~120km/h로 달리면서 핸들을 살짝 놔도, 직선 주행에 문제가 없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오래 테스트하지는 않았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 왔을 때, 난 약 4년간 나의 차량을 보지 못했다. 마치 헤어진 여자친구를 보지 못하듯 나는 상사병에 걸려서 그 어느 좋은 차를 타도 만족하지 못했다. (더 고급차를 못 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큰 결심을 하고, 큰 돈을 들여서 배로 차를 들여왔다. (차를 가지고 오는 게 그렇게 복잡한지 알았더라면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차를 가져오는 과정을 적어야 한다면 3번에 걸친 포스팅이 필요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후, 다시 4년여 만에 차를 한국에서 상봉했을 때 그 느낌은, 아, 이산가족 상봉의 경험이 없지만 대략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공감이 되었다. (이산가족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난 정말 내 차를 사랑하는구나...


이제는 흔한 후방카메라, 후방 센서, 블랙박스, 자동 프런트 라이트 시스템, 전자식 시트 제어, 블루투스, 전동 미러 등이 없는 촌스런 차이지만, 불편함 없이 아직도 잘 타고 있다. 이제 18만 km를 넘어가는 이 차량을 나는 멈출 때까지 타고 다니고 싶다. 이제는 7세대까지 나온 GTI를 다음 차량으로 사고 싶을 정도이니 골프에 대한 내 사랑은 변치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예쁘게 관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GTI 컨셉트 카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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