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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Jul 04. 2017

용기

며칠 전 매니 파퀴아오와 제프 혼의 복싱 웰터급 타이틀 매치가 있었다. 


꽤 오래전 있었던 메이웨더와의 경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심을 덜 받는 경기였다. 그러나 매니 파퀴아오의 팬이 돼 버린 나는 이 경기를 반드시 챙겨 봐야 했다.


이제 38세가 된 파퀴아오는 은퇴 선언 후 다시 복귀해 두 번째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제프 혼은 16승 무패의 꽤 좋은 경력을 가졌지만 59승 6패 8 체급 석권의 매니 파퀴아오에겐 아직 상대가 되지 않을 거란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출처: youtube

제프 혼은 28살로 파퀴아오에게 덩치와 리치, 키를 압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파퀴아오는 제프 혼에게 리치상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7라운드까지는 제프 혼의 우세가 앞서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제프 혼의 비매너 플레이로 파퀴아오는 머리에서 피가 멈추질 않아 피투성이로 싸워야 했다. '그래 파퀴아오 형님도 이제 은퇴하셔야 할 나이인데... 이 경기는 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스스로는 체념한 상태였다. 슬펐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 관람객인 내가 봐도 제프 혼은 무서울 정도로 파퀴아오를 공격했다. 정말 무서웠다. (난 항상 스포츠 경기에서 1인칭 시점으로 선수 안으로 들어가서 감정 이입을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Getty Image(왼쪽) / maxim(오른쪽)


그런데 파퀴아오 형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8라운드부터 반격을 시도하더니 긴 리치를 파고들어가 유효타를 날리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누가 봐도 쉽게 역전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었으나 그의 묵직한 한 방, 한 방들이 제프 혼의 얼굴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영어로는 'landing', 착륙하다 라는 표현을 쓰더라) 나는 소름이 돋았다. 거의 10살 차이나 나는데도 불구하고, 분명 체력적으로 무리가 있을 타이밍에, 파퀴아오는 포기하지 않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제프 혼이 비매너 플레이를 계속하자 파퀴아오가 던져버린 장면 | 출처: ABC


파퀴아오는 그 뒤로 마지막 라운드를 빼고 모두 압도했다. 9라운드에서는 제프 혼의 TKO가 선언될 수도 있던 장면이 나왔다. 주심은 제프 혼에게 다음 라운드에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안전을 위해서 경기를 중단하겠다고 직접 제프 혼 코너에 이야기를 했다. 


아쉽게도 파퀴아오는 (주관적인 관점으로) 심판들의 어이없는 판정으로 판정패를 당했다. 유효타 수를 봐도 파퀴아오가 이긴 경기였는데 도대체 복싱 판정은 왜 이리 객관적이지 못하였는지 모르겠다.


이 경기는 내게 꽤 많은 용기를 주었다. '이제 그만 됐어요..'라고 스스로 되뇌던 나와 달리, 파퀴아오 형님은 '질 수 없지'라는 오기와 근성으로 젊은 후배와 맞서 싸웠다. 주먹이 날아 들어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내가 복서들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다.


ESPN을 포함한 전 세계 네티즌들이 파퀴아오 - 혼 경기 판정에 불만을 제기했다. 경기 후, 정확한 컴퓨터 분석 판정 역시 이를 지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퀴아오는 '재경기를 원한다'라는 멘트 하나로 끝내버렸다. 경기 결과에 가장 분한 것은 파퀴아오 형님이다. 그럼에도 결과에 담담히 승복하는 자세는 대인배의 모습이다. (물론 메이웨더 경기에서의 '부상' 코멘트는 상당히 아쉬웠다)


오늘도 날아오는 주먹 앞에서 나 역시 1cm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 물러서지 않는 법들에 익숙해지고 있으니 이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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