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읽어야 하나요
얼마 전에 '인문학'에 대한 유행이 한참일 때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TV에서 조차 마치 '인문학'을 강조하며 자기계발을 위해 필요한 것처럼 억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었었다. 나조차도 부담이 되어 서점 한 켠의 인문학 섹션을 어슬렁 거렸던 기억이 난다.
'독서'야 말로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지만 언제나 마음 한편에 부담으로 자리 잡고 있는 카테고리 중 하나이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렇다고 실천하긴 쉽지 않다. 그런데 독서가 왜 중요한지 물어보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왜냐하면 남들이 다 중요하다고 했는데, 실제로 스스로 앉아 왜 독서가 내게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독서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확실하다면 마음이 불편하진 않을 텐데, 주변에서 독서를 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다닐 때마다 마음만 불편하니 이거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기를 1년, 2년 그렇게 10년이 금방 간다.
얼마 전 지대넓얕의 채사장님도 강조했듯이, 독서가 반드시 필수라고 말하긴 어렵다는데 동의한다. 따라서 독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직장 생활하면서 얼마나 피곤한가. 퇴근하고 나서 까지 독서에 대한 불편함으로 살아야 한다면 비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신이 특정분야에 대해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독서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다. 혹은,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역시,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보거나 그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종종, 혹은 대게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오랜 세월 전에 죽어서 현실에 없거나, 아니면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어 만나기 어렵다. 이럴 때 책은 정말 좋은 매개체, 아니면 유일한 통로가 된다.
평소 관심 있는 과학, 정치, 종교, 경제, 스타트업 등에 대해 굉장히 많은 영상을 보는 편이고 또한 팟캐스트를 통해 역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재밌게 듣는다. (팟캐스트를 전수해주신 팀장님께 감사) 영상과 팟캐스트는 분명 굉장히 좋은 정보전달 매개체다. 진행자가 미리 자료를 준비해서 시청자에게 편하게 보고 들음으로서 정리된 지식을 배우고 전달받기에 아주 좋다. 대부분의 경우, 진행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사전 준비를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이 참고하는 것은 역시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린 '책'을 읽고 준비한 진행자가 전달하는 한번 더 가공된 정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것이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책 자체가, 한 사람의 의견이 들어간, 즉 가공이 된 정보일 수 있는데, 그 저자의 의도와 달리 해석이 되어 전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려운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석이 되어 전달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영상과 팟캐스트와 달리 독서는 속도조절이 자유롭다. 책은 내가 주욱 읽다가 뒤로 돌아와 다시 확인하기에 편하다. 또한 문자로 되어 있기에 밑줄을 친다든지, 기록을 따로 하기에도 좋다. 영상이나 팟캐스트는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해선 내가 한번 더 정리해서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이미 정제된 단어와 문장으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쓰레기 같은 책들도 있지만...
지식과 정보전달의 목적으로만 이야기한 것 같은데 사실 책에는 문학작품과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도 있다.
난 문학작품에서 주로 소설을 좋아하는데, 사실에 근거한 논픽션 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 사실에 근거한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이런 소설을 읽는 데는 굉장히 큰 이점이 있다. 한 소설을 쓰기 위해 저자가 조사하는 양은 어마 무시하다. 그 어마 무시한 양의 조사를 내가 직접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저자의 사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그런 것들을 염두하고 읽는다면, 굉장히 잘 정리된 내용의 사안을 짧은 시간에 습득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논문'이 있겠다.
예를 들면, 최근 김진명 작가의 싸드를 읽었다. 14년도에 나온 좀 지난 책이지만, 최근 싸드 관련하여 계속적으로 외교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어 한 번 읽어봤다. 역시, 김진명 작가의 성향을 떠나서, 싸드 이슈가 쟁점화되기 전부터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해 오셨는지 엄두가 안 날 정도의 퀄리티다. (소설 싸드는 실제 싸드 이슈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나온 것 같다) 이 소설 하나만 읽어봐도 싸드가 북의 핵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다루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책은 필수가 아니지만, 내가 원할 땐, 진지하고 묵직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채사장님은 아니라고 했지만, 분명 책을 더 읽어갈수록 내 지경이 넓어지는 것은 분명한것 같다. 더 많이,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상과 달리 독서는 분명 뇌의 능동적인 운동이 필요한 행위이다. 머리속에서 상상의 프레임 안에, 활자에서 제공하는 완전하지 않은 정보를 주도적으로 조립해 나가야 올바른 독서/감상을 할 수 있다. 영상에서처럼 그림과 소리를 모두 만들어 떠 먹여주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따라서 독서는 일방적인 정보전달이 아닌, 저자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이다. 개인적으로 종교관련 저자로는 유진 피터슨과 필립얀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내가 언제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찌질한 주인공을 천재적으로 만들어내는, 그 굉장한 스토리텔링의 엄청남을 경험하고서는, 그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이런 저자들은 독서를 통해 그들과 만나고 친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자의 생각이 언제나 옳지 않다는 사실은, 내게 독서를 하는 판을 다르게 해 주었다. 어릴 때만 해도, 뉴스, 신문, 교과서, 책은 언제나 100% 옳은 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이 비판적 사고지, 학교에서 누가 교과서를 의심해가면서 공부하겠는가. 책은 저자의 생각이며, 내 생각을 바탕으로 저자와 대화할 때, 독서는 굉장히 재밌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불편하거나 지루한 책을 읽기엔 스스로 내공이 부족하다. 그냥 재미있기 때문에 읽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학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다. 편식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당장엔 재밌는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는게 가장 잘 기억에도 남는다. 종종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의 목적을, 남에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위한 것이라면, 그건 꽤나 찌질한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