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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Aug 30. 2017

맥북 수리

이전 글에 썼지만, 원치 않게 맥북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엄청난 출혈로 말이다. 

나는 저가형 노트북을 애호하는 편이다. (100만 원 이하) 이전에 쓰던 레노버 모델도 60만 원에 구매하여 SSD, RAM만 업그레이드하고 잘 쓰고 있었다. (디스플레이가 좀 별로이긴 하다) 그래도 외장 모니터와 함께 연결해서 쓰니 뭐 불편함은 딱히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원치 않게 맥북이 생겼다. 내가 사용할 일은 없어서 되팔려했더니 중고가가 너무 낮았다. 거의 그냥 새 제품인데... 그래서 그냥 두 달째 묵혀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사용해 보려 하니, 사용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화면에 이상한 잔상과 얼룩이 생겼다. 


왼쪽 아래 얼룩과 코너, 대각선의 이상한 잔상


떨렸다. 비싼 건데.. 하루도 사용 못 해보고 이런 불량이 나다니.. 

곧바로 증상에 대해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여러 검색 결과가 나오지만 저렇게 사선으로 되는 증상은 한국어/영어 모두 없었다. 


네이버의 맥북 사용자 모임 카페에 가입해 집단지성의 힘을 빌렸다. 그중 한 수리업체분께서 사진만 보시고도 '침수'라는 진단을 내려 주셨다. 나는 그 무엇도 흘린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 자체 불량이 아닐까 하여 애플 공식 수리센터에 가져갔다. 강남에 있는 공식수리센터에서는 화면만 보고도 침수가 맞다고 하며 상판 디스플레이 어셈블리(모듈) 전체를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셨다. 거의 백만 원에 가까운 수리 견적 비용. 


다시 말했지만 내가 전에 사용하던 노트북이 60만 원에 업그레이드 다 해도 80만 원이 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맥북 프로를 3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주고 새 제품을 (어쩌다 보니) 구매하게 되었고 이제는 수리 비용이 100만 원이 나온 것이다. 원치 않았던 컴퓨터에 이런 비용을 또 소비할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사설 수리 업체 및 개인 수리장인 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후기가 좋은 분 들 중, 연락이 닿은 분이 있었다. 유명한 '맥가이버'님이다. 


마포에 계신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진단을 받았다. 친절히 설명을 해 주시면서 하나씩 분해하기 시작했다. 

내부를 확인해 보니, 물 침수가 아니라 기름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되었다. 꽤나 깊숙이 여기저기 침투해 있었다. 그래서 두, 세 시간 사용엔 문제가 없었으나 점점 기름이 번지면서 디스플레이 모듈로 퍼진 것이다. 이제 증상에 대한 원인은 밝혀졌다. 다만 난 맥북 근처에 기름을 둔 기억조차 없을 뿐... 


애초에 이런 비싼 컴퓨터를 이용해 팀원들을 모집하려던 내 어설픈 계획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큰 비용을 지불하고 팀빌딩에 있어 많지 않은 부분들을 배웠다. 


결론은, 본체 메인보드로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부품들을 해체하여 기름을 닦아내어 주셨다. 수고하신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비용의 수리비를 받으셔서 놀랐다. 제안을 주신 것은, 디스플레이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사용하다가 맥북 2016년 터치바 모델의 상판 모듈 및 액정 패널이 ebay 혹은 aliexpress에 많이 돌아다니게 되고 가격이 저렴해지면 노려보자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당장 비싼 가격에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화면을 교체할 필요가 없다. 그냥 쓰겠다고 했다. 코딩하는데 불편함은 크게 없다. 누가 물어보면 원래 이런 디자인이라고 말해야겠다. 몇 년 전 축구 유니폼도 비슷하게 유행한 적이 있지 않은가. 

비용 지출이 쓰라렸지만 이것 또한 뭐 어쩌겠는가. 아픈 만큼, 돈 쓴 만큼 배우고 잊히지 않겠지.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이런 내용들로 시간과 마음을 빼앗길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더 비싸다. 요즘 망각하는 사실이다. 시간이 돈만큼, 아니 어쩌면 돈 보다 더 비쌀 수도 있다. 내가 돈을 아끼는 마음과 동일하게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맥북 수리에 마음을 다치고, 시간도 썼다. 치명적인 부상이다.


맥북 수리하시는 '맥가이버'님은 1인 기업가인 셈이다. 혼자 모든 고객들을 상대하시고 모든 수리를 직접 하셨다. 원래 맥킨토시 컴퓨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사무실엔 오래전 애플 2 모델부터 수십 가지의 애플 컴퓨터 모델들이 있었다. 혼자 일하시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대응하느 고객들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여쭤봤다. 사용하시는 툴은 있는지... 이제는 모든 사업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빼먹지 않고 질문하게 되었다.


장비로 사람을 꼬시지 말자. 이차적인 문제다. 존경하는 표철민 대표님은 책에서 회사의 비전을 팔라고 하셨다. 옳으신 말씀이다. 회사의 비전도 못 팔면서 팀 빌딩을 하겠다는 건, 내 회사의 비전이 별로라는 이야기다. 스스로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다. 예전에 moduTable 할 때는 아이디어에 자신이라도 있었다. 반성할 필요가 있다. 혹은 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리뷰가 필요한 것이다. 동시에 비전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시장 크기에 대해서도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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