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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Aug 02. 2016

직장인의 뒤늦은 삽질

내 일을 하고 싶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내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았다. 나는 항공기계공학도로써 대학교 때는 좋은 비행기 회사에 들어가 제어 쪽으로 전문성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주변 미국 친구들은 락히드마틴, 보잉, 노쓰롭 그루만, NASA, BAE 시스템, 씨콜스키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정도의 내로라하는 항공 및 우주 회사들로 취직을 했다. 미 시민권이 없으면, 군 관련 회사는 지원조차 할 수 없었기에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 sensor & actuator 관련 실험을 했다. 실험이나 학업이나 나는 썩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비지니스와 엔지니어링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 등이 유행했는데, 그 당시에도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꼴에 엔지니어로써 자존심은 있어서 특별한 기술 없이도 먹고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던 비지니스와는 왠지 모르게 섞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CB (printed circuit board) 인쇄 회로 기판: 여기다가 부품도 장착하고 납땜도 하고, MCU에 SW를 올리면 전자제품이 돌아가요

한국에 돌아와 의도치 않게 밸브제어기술연구소에서 임베디드 SW가 돌아가는 밸브 컨트롤러 HW엔지니어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개미 정도 크기의 SMD 칩을 3년 동안 납땜하고, 테스트해보고 회로 및 부품 관리를 했다. 산업용 신규 통신 버스 선행개발에 참여해서 조금의 주체성을 가지고 일을 했고, 영어를 써야 하는 인증 업무에 투입되었지만 역시 주인의식이나 긍지를 가지고 일을 해본 경험은 크지 않았다. 매일 아무 이유 없이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8시 정도까지 야근을 해야 했던 문화가 너무 싫었다.

미 공군이 보유한 MQ-0 Reaper 출처: U.S. Air Force

이후 대기업 연구소에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무인비행기 개발, 비행제어시스템 쪽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꿈만 같았다. 한국에서 무인비행기 개발이라니! 설레는 마음에 연수도 너무 즐겁게 다녀오고 자부심도 가득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여느 대기업이 그렇겠지만 보수적인 회사 문화 안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사소한 프로세스가 많았다. 이런 직무와 무관한 업무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게 되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질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담당 업무를 담당하기에 내 역량도 부족하기도 했었고, 또 큰 스케일 안에서 너무 작은 부분을 담당하는 일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책임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무인기 발전을 위해 일하시던 나의 사수님과 타 부서 과장님들은 존경받기에 충분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낮에는 계속 넘쳐나는 업무 요청을 방어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지나치게 자주 있던 회의에 시간을 뺏기고, 그 회의에서 오가던 업무 메모를 정리하는데 시간을 내고, 고객 방문 출입 조치에 시간을 썼다. 정작 내 개발 업무를 할 수 있던 시간은 저녁 식사 이후였다. 매일 9시, 10시까지 사무실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당연히 이 일의 결과물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리 만무했다. 내가 생각했던, 업무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인기 개발에 쏟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입사의 기쁨도 잠시, 나는 너무도 빨리 행복함이 무너져 내렸다.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는, 야근 이후 동기들, 친구들과 함께 연구소 아래 동네에 가서 종종 맥주 한 잔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고, 흔히 브런치 '퇴사'주제의 글처럼, 수많은 퇴사 면담 결재를 받으러 다녔다. 걱정하시는 많은 분들과, 팀장님의 여러 권유가 있었지만, 끝내 존중해 주셨고, 퇴사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팀장님께 '창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창업'을 바로 하기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 '기술 영업'직을 먼저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창업'을 바로 하기엔 겁도 나고, 어느 시장에서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기술영업직을 찾기 시작했다. 나름 핫? 하다는 자동차 전장 쪽에서 찾기 시작했고, 나의 기준은 회사의 제품과 연봉이었다. 몇 개월간의 방황 및 여러 회사와의 면접 끝에 내가 정말 원했던 자동차 네트워크 임베디드 SW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주체적으로 job description을 깊이 고민해 보고, 내가 해야 할 직무에 대해 진지한 검토 끝에 결정한 입사였기에, 진지하게? 행복했다. 1년을 적극적으로 배워가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했다. 회사와 팀원들, 사수님, 그리고 팀장님도 너무 좋은 분들이셨다.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 내가 원했던 outbound로 고객을 만나러 나가고, 발표를 하고, 미팅을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업무 모든 내용들이 마음에 들었고 급여 역시 아쉽지 않게 회사에서 대우를 해 주었다. 물론 자유로운 출퇴근과 별개로, 업무시간은 전쟁과 같이 흘러갔다. 돈이 오가는 영업직이라 업무시간에는 반드시 집중해서 실수가 없도록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이 즐거웠고, 프로젝트가 성사되어 판매가 이루어지면, 꽤나 보람이 생겼다.


그런데, 1년째가 되던 어느 날, 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잘되고, 바쁘고, 제품이 잘 팔리고, 급여를 꼬박 꼬박 받아가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인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시장 안에 다시 던진다면,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은 또 다른 회사가 될 것이다. 즉, 나는 '회사'라는 종속되어야 할 주체가 없다면, 개인 스스로 stand alone으로는 가치가 0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는 프로세스가 참 잘 되어있고, 이전 대기업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효율적인 프로세스룰 가지고 있다. 제품 역시 업계에서 거의 독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객 쪽에서 구매를 하고 싶어도 서둘러 못 사는 제품이다. 판매자로서는 고객들의 수많은 요청이 행복한 괴로움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상황이 내게 주는 return 값은, 안정적으로 나오는 급여와, 약간의 추가되는 보너스, 그리고 향후 1~2년을 바라볼 수 있는 고용안정성이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가?라고 지속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회사의 좋은 제품과, 회사의 좋은 프로세스, 그리고 회사의 브랜드가 없다면, 나의 가치는 얼마 정도인가? 스스로 좋은 답을 할 수 없었다.

여수, 2016년 봄

퇴근 후 나는 나의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삽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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