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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Feb 09. 2017

눈치 보지 말고 살 수 있을까

왜 어려울까요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외국이 우리나라보다 특별히 무엇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한국에 있다가 외국으로 가면, 흔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프레임, 혹은 상대평가를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 있는 느낌이 좋다. 

한국에선 학생 때 성적으로, 대학교를 어디로 진학하는지, 취업은 어디로 하는지,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 결혼은 누구와 하는지, 배우자의 직업은 무엇인지, 결혼해서 들어갈 집은 어느 동네인지, 차는 무얼 타는지, 자녀를 낳으면 학교를 어디로 보낼지,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무한 상대평가는 끝이 나질 않는다. 


이 상대평가를 인정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여기에 영향을 받아가며 살게 된다. 존경스러운 분들은 이러한 끔찍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신과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정말 의미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사는 분들이다. 난 그러지 못한 채 살아왔다. 가족들의 기대, 주변에서 날 대단하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말로 끔찍한 것은, 단 한번 이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짧은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마음이 아닌, 주변의 눈치를 보며 꽤 많은 것들을 결정해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행동 의식을 'align'이라고 부른다. 정해진 프레임 워크에 나 자신의 삶을 적당한 위치에, 가능하면 좋은 곳에 가지런히 자리를 잘 잡는 것. 그리고 그 주변의 환경에 나 자신을 맞춰 사는 것이다. 


이러한 'align'이 끔찍한 이유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기준을 둔다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느끼는 행복보다, 남들이 평가하는 우리의 '행복하지 않음'에 기가 죽고, 그들이 말하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비판 없이 따르게 된다. 아직도 아무도 묻지 않지만 다수가 따르는 무언가는, 그냥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들이 팽배한 것 같다. 


해외에 이러한 상대평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선택이 다양하고, 각자의 선택에 대해 그 누군가가 줄자로 재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각 개인의 선택폭이 좀 더 여유 있고, 배려받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돌아와 살아왔던 지난 6년간, 나도 모르게 이 사회에 나 자신을 'align' 시켜 살아왔던 것 같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 자신의 솔직한 하고자 하는 무엇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의 진로를 선택해 왔다. 30대 초반이 되면 결혼 준비를 해야 하고, 곧 결혼하고 2세를 낳아야 하며, 집은 어디로 얻어야 하는 그러한 커리큘럼들을 긍정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나쁠 것 없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것을 마치 수학의 정석처럼 정해진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왜 외국인이 40대에 청바지를 입고 수염을 기르며 오토바이를 타면 멋있어 보이고, 한국인이 그렇게 살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편견일 뿐이다. 


눈치를 보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실패다. 진짜 눈치 보지 않는 사람들은, '눈치'라는 단어를 잘 모른다. 흥미로우면 찾아보고, 재밌을 것 같으면 해 보면 된다. 평생 돌다리만 두드리다가 옆에 철교 생기고, 철교 생기면 철교 두드리다가 다리를 건널 일 조차 없어지게 마련이다. 마음껏 소신껏 결정하고 행동하되, 즐기고 최선을 다하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자. 갔다가 돌아온다고 해서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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