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길었으면 좋겠다
나는 어디 한 장소에 앉아서 오래 무언가를 집중해서 오래 앉아있는 타입이 아니다.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면 오히려 무언가에 집중하는데 심각하게 방해가 되거나 졸기 일쑤다. 한 마디로 집중력이 굉장히 낮다.
그래서 백색소음이 가득한 카페에서나, 책장 넘기는 소리부터 발자국 소리가 비주기적으로 들리는 공공 도서관에서 공부가 더 잘되곤 했다. 암기는 어디서 가장 잘되냐고? 바로 화장실. 심리학적으로 물소리가 사람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데 잘은 모르겠다. 이상하게 흔들리고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책이 더 잙 읽힌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 흥미진진하게 잘 읽히는 (예컨대 '퇴마록'이라든지) 책이 아니라면, 너무 조용하거나 혼자 있는 곳에선 책이 잘 안 읽힌다. 왠지 주변에 비 규칙적인 노이즈가 있을 때 책의 내용이 쏙쏙 들어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읽기 장소는 지하철이다. 버스도 좋지만 버스는 어디에 앉든 햇볕에 의해 비치는 조명의 양이 변하고, 운전자에 따라 급출발/급정거가 심할 때가 있다. 지하철은 적당한 소음에 일관성 있는 조명이 책을 읽기에 가장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 (물론 가끔 울리는 끊임없는 카톡 소리는 정말 참기 힘들다) 또한 버스에선 못 앉으면 책을 읽기 어려운 반면, 지하철에선 서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첫 직장에서는 집에서 직장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안 되는 공단에서 일을 했다. 두 번째 직장은 회사 내 기숙사에 있어서, 방에서 연구실까지 뛰면 5분도 안됐다. 출근길에 대중교통도 안 타고 얼마나 좋겠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내겐 좀 아쉬웠다. 대학교 때는 통학을 자차로 해야 했는데, 왕복 한 시간이 넘는 적당한 거리의 운전시간에 다양한 오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각종 음악, 설교, 강의 및 라디오를 듣게 되었고 그 시간은 하루 중 내게 꽤나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엔, 집에 도착해도 차에서 내리지 않곤 했다.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히 길었으면 좋겠다. 가장 집중력 있게, 가장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후에 집에 서재가 생기더라도, 조용하고 나 혼자 사용하는 것이 아닌, 약간은 사람 소리가 들리는, 부석거리고 킁킁 음식 냄새가 나는 곳에서 책을 읽고 싶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