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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Jan 27. 2017

의미 있는 여행기록이란

브런치에서 인기 있는 글 중 단연 일등 카테고리는 '여행'이다. 그만큼, 여행에 관한 글도 차고 넘친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이 여행 관련 글들의 목적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간 써왔던 나의 여행 글들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지루했기 때문이다. 


여행 관련 글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나의 관점과 감정으로 재해석하여 남기는 일종의

 '스토리'가 첫 번째,

두 번째는 이후 같은 곳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들에 대한 

정보전달 목적의 글이 될 수 있겠다.

 내 글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의 의도는 여행의 재해석인데, 쓰고 나니 내용은 어설픈 정보전달의 글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흥분과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내 여행의 '요약'을 재빨리 남기려 노력했다. 정신없이 글을 남길 때는 내가 경험한 그 기억들이 몸에 아직 남아있어, 이게 글에 어떻게 남겨지는지조차 모른 채로 기록되기가 쉽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당최 그 당시의 기분이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에서 아무리 빼곡하게 여정을 자세히 그려도 그렇다. 당황스럽다. 생각해보건대, 아마도 사람의 기억은 일의 순서를 기억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대게는 특정 이벤트를 중심으로 자신의 기억이 받아들인 후, 몇몇 특정 감정상태를 과장해서 저장해놓기 때문은 아닐까? 


대만 타이페이의 한 길거리식당


다른 누군가의 여행기가, 나 스스로 직접 하는 '여행'보다 여행의 느낌을 더 잘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건 마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연애를 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그렇다고 내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자신이 여행하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여행지에서의 순간순간들을 아주 맛깔스럽게 잘 전달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비결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하게도 이런 맛깔나게 쓰인 글들을 보면, 여행사에서나 다룰만한 자세한 여정과 코스, 맛집 정보들이 있기보다는, 순간순간에서의 자세한 묘사라든지, 특정 장소에서의 특정 인물과의 대화 라든지를 잘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많은 경우 극적 요소를 위해서 '과장'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관계를 뒤집는 경우가 아니라면, (청문회에 제출해야 할 자료가 아닌 이상) 이 '과장'은 비문학에서의 넉넉한 가슴으로 문학의 표현을 받아들여준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이 든다. 


오해가 생길까 하여 말하자면, 여기서 '과장'이란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모든 문학작품 내용의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모두 거짓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과거의 기억을 저장하는 행위 자체에 어느 정도의 '과장'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흔한 일상적인 내용들은 기억하고, 또 지속적으로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의 '과장'이 바로 우리가 원했던 그 '재해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다. 최대한 사실대로 그리는 정물화도, 있는 그대로를 찍는 사진도, 소위 fact(팩트)를 전달한다는 신문기사에도 각자의 재해석과 의견이 담겨있다. 놀랍고 재밌는 사실은 전혀 '의견'이 담겨있을 것 같지 않은 programming code에도, 또 programming 언어 관련 공식 문서상에도 이런 '사심'들이 왕왕 나온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딜 다녀오고 남기는 글에는, 눈치 보지 말고 나의 감정과 느낀 바를 여과 없이, 하지만 내가 느낀 그대로의 냄새를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해 봐야겠다. 이전에 재미없게 기록했던 글을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 


대만 타이베이에 시티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너무 허기져 버스 터미널 주변을 돌아다녔다. 어디 맛있는데 없을까.. 하지만 한국에서도 맛있는 곳을 잘 못 찾아다니는데 내가 타지에서 어딜 잘 찾을 수 있겠는가. 그냥 사람 북적거리는 곳으로 가자. 아, 저기 뭔가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곳 발견. 다른 식당들보다 뭔가 지저분해 보인다. 그리고 싸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이 줄 서서 밥을 사가네? 그래 여기서 먹어보자.

메뉴가 모두 중국어로 되어있다. 사진도 없다. 그리고 심지어 메뉴는 1번에서 20번까지 있다. 이럴 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무조건 1번을 먹는다. 보통 가장 기본적이거나 잘 나가는 메뉴가 1번이기 마련이다. (라고 하지만 예외적으로 1~5번 전반부는 뭔가 애피타이저처럼 식전 음식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매우 난감, 그래서 오히려 약 5~8번 사이를 시키는 것도 방법)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뭘 시키는지 보고, 그냥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손가락질로 같은걸 달라고 하면 된다.

약 5분간 기다리며 관찰해보니 여기는 돼지고기 덮밥집이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야채와 계란 프라이를 얹는 조합으로 메뉴가 20개나 있던 것이었다. 에잇, 앞서 사람이 시킨 것을 손짓 발짓으로 달라고 했다. 주로 테이크아웃인데 그냥 좁은 식당 안에서 먹었다. 통로가 협소해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뭔가 치인다. 밥을 먹고 있는데 뭔가 정신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밌고 맛이 있다. 살아있는 느낌? 약 4일 뒤에 대만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나름 고급 음식점을 갔었지만, 이 시끄럽고 혼잡한 시장에서의 밥이 훨씬 맛있고 기억이 남는다. '현장'이지 말입니다.
 - 대만에서의 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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