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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Feb 03. 2019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

맥베스의 불안과 공포

불안은 인간에게 어쩌면 가장 취약한 심리일지도 모릅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많은 정신질환도 불안 심리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불안해야 할까요? 불안은 시간과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데 잠시 후의 일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한 치 앞을 못 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시간을 말합니다.


중세 이전의 시대에 불안이나 고통의 강도는 지금보다는 훨씬 강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일 텐데 중세 이전에는 10세 이하의 어린이 중 반수 정도는 살아남지 못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폭력이나 자연재해의 공포도, 기아의 두려움도 더 심했을 겁니다. 현대인의 불안감은 어떨까요? 우선 불안감의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현대의 불안은 인간의 욕망과 관련이 많습니다.  욕망은 다양해졌는데 충족되지 않을 가능성도 함께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불안이란 미래의 욕망이 달성되지 않을 것에 대한 현재의 걱정이고 고통입니다.


학교에서는 성적 때문에, 졸업하면 직장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는 승진이나  출세 때문에, 애를 가지면 애의 성적, 진로뿐 아니라 노년에 대한 불안 등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인간의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대의 불안이란 동류 집단과의 비교 때문에 가중되는 측면이 강합니다. 불안은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갈등'으로 생기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불안의 원인은 대부분 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불안이란 원인을 제공하는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 사건보다는 내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방식 때문에 발생하니까요.


셰익스피어의 사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불안과 공포에 관한 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짧은 작품 중 하나이지만 책의 분량보다는 훨씬 큰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얇은 책에서 그렇게 철학적인 깊이와 문학적 표현의 묘미를 음미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맥베스는 전투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인데 귀환 중에 마녀를 만납니다. 그는 세명의 마녀로부터 '코더의 영주님'이라고 불리며 장래에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마녀들은 맥베스와 동행이던 뱅코우에게는 장차 왕이 될 분을 낳을 거라는 칭송을 합니다. 그 예언은 맥베스의 야심에 불을 붙이는 동시에 불길한 기운을 내뿜습니다. 마녀들은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한 주문을 합창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이고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


맥베스는 마녀의 주문과도 비슷하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렇게 불쾌하고 아름다운 날은 처음 본다."


맥베스가 이렇게 마녀들과 조우하며 돌아오는 중에 왕의 신하가 나와서 그에게 코더의 영주로 봉해졌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원래 코더의 영주였던 사람이 반역죄로 지위를 박탈당한 것입니다. 마녀의 첫 번째 예언이 이루어지자 맥베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합니다. 왕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자신이 왕이 된다면 현재 왕을 시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양심의 가책으로 불안감은 증폭되고 공포로 확장됩니다. 맥베스의 다음 대사는 왕의 살해를 상상하고 있는 불안한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현재의 공포는 상상의 공포에  비하면  무섭다고 할 수 없다.

내 생각 속의 살인은 단지 상상뿐이거늘

내 한 마음을 흔들어

기능을 상상 속에 마비시키니

실체가 없는 것밖에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눈앞의 공포보다 상상의 공포가 더 두렵다는 것,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과 공포는 불확실할 경우 더욱 마음이 괴롭습니다. 맥베스는 마음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왕의 시해를 망설이는데 그의 부인이 어서 결단을 내리라고 부추깁니다. 결국 맥베스는 덩칸 왕이 자기 성을 방문해서 연회 후 잠든 사이에 그를 칼로 찔러 살해합니다.

바다의 물을 다 쓴다고 해도 이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대로 왕위에 오르지만 왕    마음이 편할 순간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비밀을 알고 있는 뱅코우와 그 아들을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고 합니다. 뱅코우는 살해되지만 그의 아들은 도망갑니다. 돌아와서 상황을 보고하는 자객에게 맥베스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발작이 재발하겠구나. 그 아들놈을 처치했다면 나는 완벽했을 텐데...

그러나 이제 오두막 골방에서 끈질긴 의심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구나. 뱅코우는 안전한가?"


뱅코우의 처치가 확실한가를 묻는데 그가 안전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자객도 "예, 폐하, 구덩이에 안전하게 누워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는 수밖에 없다는 말일까요? 의미심장합니다. 맥베스는 결국 반대파와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 불의의 왕인 맥베스는 정의의 편에 패하게 됩니다. 맥베스의 불안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해체됩니다. 그가 죽음을 앞에 두고 깨달은 인생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일, 내일, 그리고 내일은

이렇게 작은 걸음으로 하루하루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로 기어간다.

우리의 지나간 모든 날은 바보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밝혀 주었지. 꺼져라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자기 시간을 뽐내고 안달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맥베스와 같이 불안과 공포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도 인간이고,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것도 인간입니다. 문제는 불안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우리의 방식 아닐까요? 실패가 두렵나요? 경쟁에 뒤떨어지는 것이 불안한가요?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얻고 싶은 것을 못 얻을까 봐 걱정되나요? 맥베스의 깨달음과 같이 우리가 가진 불안의 대상은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아닐까요? 불안의 원인뿐 아니라 그 해결도 내 마음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다음과 같은 답을 줍니다.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지위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소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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