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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Dec 18. 2018

클레오파트라의 탕녀 이미지

탕녀와 매력의 여왕 사이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여왕중 하나인 그녀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아마도 영화를 통해서일 겁니다. 저도 클레오파트라 하면 영화 속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먼저 떠오르는군요. 이후에도 클레오파트라는 여러 번 영화화되었지요. 여러분은 클레오파트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의 대부분은 셰익스피어로부터 왔다고 생각됩니다. 셰익스피어는 클레오파트라를 주인공으로 발탁한 가장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바로 그것이지요.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쓰지 않았다면 클레오파트라가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의 소재를 역사에서 가져왔습니다. 주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안토니우스 편을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평가에는 로마의 시각이 크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첫 번째 이미지는 로마의 장군을 타락시킨 탕녀에 가깝습니다.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 때 카이사르를 유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카이사르 암살 후 옥타비우스와 로마의 일인자를 다투던 안토니우스를 파멸시킨 탕녀라는 것이 로마의 시각이었던 모양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 더 낮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파스칼의 언급은 적절한 비유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존재가 로마 역사에 미친 영향이 꽤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들을 낳았고 나중에  안토니우스와는 사실상 부부관계였지요. 카이사르는 여자 때문에 정치적 야망을 손상시키는 타입의 정치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 가졌던 아들 카이사리온에 대해서 언급했던 적이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서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에 매혹된 것은 사실이지만 카이사르는 냉정한 정치가였습니다. 정치와 개인적인 남녀관계를 구분했던 것이지요.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를 처음 만나는 장면은 매우 극적인데, 자기 몸을 양탄자에 말아서 통째로 신하가 들고 와서 카이사르 앞에 나타나게 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도 그렇고 영화를 안 봤더라도 꽤 에로틱한 상상력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은 클레오파트라가 당시 처한 환경은 정치적으로 권력을 빼앗길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권좌에서 밀려나는 상황이었고, 정적들의 눈을 피해 카이사르를 만나기 위한 절실함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이 사건을 계기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도움을 받게 되고 여왕으로서의 권력을 안정화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와의 관계에서 정치적 재미를 본 클레오파트라는 나중에는 안토니우스의 가치를 단 번에 알아봅니다. 로마의 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이집트의 안정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클레오파트라는 탕녀이기 이전에 정치적 감각이 고도로 발달한 영리한 정치인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당시 이집트에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고 클레오파트라는 과장을 좀 보태서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할 정도로 실제 매우 지적이고 박식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주변국의 언어를 모두 말할 수 있어서 통역 없이 직접 외교적 담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하네요.        


셰익스피어가 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복잡한 정치적 맥락은 배경으로만 삼고 그 두 사람의 사랑을 주로 얘기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주기 위해 배를 특별하게 꾸미고 여왕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그 장면을 표현합니다.


“그녀가 탄 배는 빛나는 옥좌처럼

 물 위에서 타올랐지. 선미는 금박으로 덮여 있고

 돛은 진홍색으로 향기를 머금고,

 바람은 돛과 사랑의 열병에 빠져서 살랑거렸지.

 노는 은빛인데 플루트 소리에 맞춰 물을 갈랐고,

 물살이 마치 휘젓는 노와 사랑에 빠진 듯이 더욱 빨라졌네.

 그녀 자태에 대해 말하자면 이건 온갖 묘사를 보잘것없이

 만들 정도지. 그녀는 금실로 짠 천위에 기대 있었는데,

 자연을 능가하는 상상력으로 그린 비너스 그림을

 능가했다네.

 ...

 온 도시 사람들이 그녀를 보러 나갔기에, 안토니우스는

 홀로 광장을 왕좌처럼 차지하고 앉아서

 허공에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네.

 그 공기마저 클레오파트라를 보러 갈 판이니

 자연에 그만큼 진공의 구멍이 생겼을 것이네. “


클레오파트라가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면 휘파람에 의해 생긴 공기 소용돌이까지 여왕을 보러 가서 진공이 생겼겠습니까? 안토니우스는 사실 파르티아 원정 자금을 얻으려고 여왕에게 손을 벌릴 생각으로 이집트에 왔지만 그보다는 여왕의 매력에 사로잡혀 사랑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는 로마의 패권을 다투는 안토니우스도 이집트의 절대권력을 가진 여왕도 대개는 약간씩 결함을 지닌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앞뒤 재지 않고 질투심을 폭발시키고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우스와 패권을 겨루어야 하는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도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싸움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안토니우스는 뛰어난 장군이기는 했지만 쾌락에 탐닉하는 방탕 기질이 충만하고 정치적인 감각은 좀 떨어졌던 것으로 그려집니다. 플루타르코스나 셰익스피어 마찬가지입니다.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그는 정치적인 이성과 사랑의 감정 사이에 엄청난 갈등을 하면서도 늘 감정을 따라가게 됩니다. 결국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우스에게 참패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완벽한 패자가 됩니다.


셰익스피어가 얘기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역사적 인물의 무게를 넘어서서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역사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시각에서 클레오파트라를 그렸습니다. 약간은 억울한 탕녀의 이미지를 벗고 매력 있는 여인으로 조명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그들의 모습은 실패한 권력자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인간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찬양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죽어갑니다. 죽는 모습도 약간 대조적인데 안토니우스는 칼을 깊게 찌르지 못해 단번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덕분에 그는 클레오파트라 곁으로 데려가 달라고 해서 그녀의 품에 안겨 사랑을 확인하며 죽어갑니다. 반면에 클레오파트라는 시녀들과 순서까지 정해서 독사에 물려 깔끔하고 처연하게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지막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처리하는 셰익스피어의 방식을 보면 그를 멜로드라마의 시조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셰익스피어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전쟁이나 정치에서는 실패를 했지만 사랑에서 고귀한 성취를 하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본 것은 역사나 정치가 아니라 인간 그리고 관계였던 것이지요. 안토니우스는 단지 바쿠스적 기질을 가진 난봉꾼, 혹은 실패한 장군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랑에 몰입하는 낭만시인으로, 클레오파트라는 요부이며 영웅을 망가뜨리는 탕녀가 아니라 한 남자를 온 힘을 다해 사랑한 매력적인 여인으로도 기억되게 된 것은 셰익스피어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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