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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Dec 09. 2018

샤일록에 대한 심각한 오해

일방적인 편 가르기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 중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 아닐까요. 어릴 적에 읽었던 어린이 버전의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대개 포샤의 명재판으로 샤일록을 멋지게 굴복시키는 이야기지요. 일반적으로 샤일록은 악랄한 고리대금 업자, 포샤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부자 귀족 상속녀로 각각 악과 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착한 기독교인이 악한 유대인에게 통쾌하게 승리하는 얘기로 알고 있을 겁니다. 작품의 구도는 기독교 진영과 유대인 진영의 대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양면성을 가지는 인간과 세상을 이분법적 눈으로 쉽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한 작가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양면성이란 인간 본성의 복잡성 관점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화된 이분법과는 반대의 의미입니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우리 편이 아니면 다 적일까요?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은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진보가 아니면 다 보수일까요?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샤일록과 포샤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요?


사건의 발단은 포샤에게 청혼할 계획인 바싸니오가 친구인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에게 와서 청혼 자금을 요청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안토니오는 해상무역을 하는 상인인데 모든 현금이 사업에 투입된 상태라 3000두카토라는 돈을 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요청합니다. 두카토란 당시 베니스의 금화인데 청혼 자금으로 3000 두카토란 빈털터리 신사인 바싸니오에게는 사실 터무니없는 고액이지요. 요즘으로 말하면 한 푼 없는 오렌지족 청년이 재벌집 딸에게 환심을 얻기 위한 자금으로 수억 원을, 현금에 어려움이 있는 벤처사업가 친구에게 빌려달라는 격입니다. 안토니오가 우정의 사나이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가 선량하고 착한 베니스의 상인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와 샤일록의 다음 대화를 보시지요.


"어때, 샤일록, 변통해 주겠는가?"

"시뇨르 안토니오, 당신은 말이요, 지금까지 툭하면

거래소에서 내 욕을 했지.

내 돈이 어쩌고저쩌고, 이자가 이러니저러니,

그래도 여태껏 난 어깨를 움츠리고  참아왔소.

참을성은 우리 유대인의 장기니까.

당신은 나를 이교도라느니 개라느니 하면서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하더니, 돈을 빌려달라고"

"앞으로도 당신을 개라고 부를 거고

계속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할 거요.

돈을 빌려 주더라도..."


거래의 상대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니지요. 당시 기독교인은 교리에 의해 대금업에 종사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교에는 그런 교리의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대금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부 유대인이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아니라면 엄연히 동등한 사업가였던 거지요. 샤일록의 입장에서는 유대인으로서 그동안 받아온 박해를 복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미우면 죽이고 싶지, 그런 게 인간 아닌가?" 샤일록의 대사인데 공감이 가지 않습니까? 결국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담보로 요구해서 3000두카토를 빌려주게 되는데 기한 내에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법정으로 가게 되어 유명한 포샤의 재판이 열립니다. 계약의 적법성을 인정받으며 샤일록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던 재판이, 샤일록의 칼이 안토니오의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 포샤가 "잠깐" 하며 반전이 일어나는 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피 한 방울도 없이 살만 베어낼 수 있습니까? 계약서의 명시적 조항에 앞서는 것이 상식이니 포샤의 논리는 사실 억지입니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포샤는 샤일록의 재산을 몰수하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명령하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샤일록이 사채 계약서에 안토니오의 생 가슴살을 담보로 명시하는 억지 논리에 그 이상의 억지 논리로 포샤가 재판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는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사실 포샤는 판사도 아니고 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법학박사도 아닙니다. 아무도 지적하지는 않지만 법학자를 사칭한 사기꾼이지요. 셰익스피어는 권력의 오용과 남용에 대해서 신랄하게 풍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이 버전에서 보았듯이 착한 기독교 진영이 악한 유대교 진영에 통쾌하게 이기는 단순한 얘기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오히려 작가는 기독교인의 위선과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더 나아가서 착한 진영과 악한 진영의 편 가르기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재판에 이기고 벨몬트의 집에 돌아온 포샤의 다음 독백에도 숨겨져 있습니다. 바싸니오와 안토니오 등 베니스 상인의 진영에서는 승리의 축제를 준비하는데, 똑똑한 포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떳떳하지 않은 심정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밤은 마치 병든 낮과 같아.

좀 더 창백해 보이고,

태양이 숨어버린 낮인 것 같아."


또 최종 판결을 받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샤일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여기를 떠나게 해 주십시오. 몸이 불편합니다. 나중에 문서를 보내주시면 그때 서명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셰익스피어가 자신이 샤일록을 너무나 비참한 상태로 만든 것에 대해 가졌던 연민의 감정이 담긴 대사로 느껴지지 않나요? 셰익스피어는 겉모습과 실제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역설이기도 하고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겉모습과 실제는 다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셰익스피어는  가르쳐 줍니다. 편 가르기 이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안 됩니다, 베니스를 다 주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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