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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Mar 29. 2019

질투 - 녹색 괴물

악마 같은 인간 이아고

진정한 의미에서 악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이라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악으로만 이루어진 인간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도 "우리의 인생은 선과 악의 실을 엮어서 짠 그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에게도 선과 악은 공존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악인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도 그의 작품에서 그런 예를 몇 가지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악인은 <오셀로>의 조연 이아고 Iago입니다. 악인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해 주는 것 같이 지독한 인물이지요. 이아고는 베니스의 장군 오셀로의 부관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오셀로는 그가 아니라 카시오를 부관으로 임명합니다. 이아고 생각에 카시오보다는 자기가 더 적임자입니다. 자기가 선임이고 실전 경험도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셀로의 선택은 카시오였고 이아고는 말도 안 되는 인사발령이라고 분노합니다.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인사란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이라 불만이 있더라도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는 감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아고는 특이한 인간이라 앙심을 품고 복수하기로 하는데 그 수법이 주목할 만합니다. 이방인 장군 오셀로가 백인 귀족 여인 데스데모나와 결혼한 것까지 못마땅했던지 부부관계를 이간질하여 오셀로의 질투심을 유발합니다. 데스데모나가 부관 카시오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오셀로가 의심을 하도록 정보를 조작하고 심리를 뒤흔듭니다. 수컷 본능에 의한 성적 질투심이야말로 치명적입니다. 오셀로는 순진하게도 이아고의 농간에 걸려드는데 그 과정은 보기가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오셀로가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어리석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비난하거나 비웃을 수가 없습니다. 이아고의 농간이 너무나 교묘해서 어느 순간에는 나도 저런 놈한테 걸리면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동정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아고가 처음 행동에 옮기는 방식도 특이합니다. 한밤중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브라반시오 의원의 집 앞에 가서 졸개 노릇을 하는 로드리고와 함께 소란을 피워 사람들이 뛰어나오게 합니다. 잠옷 차림으로 나온 브라반시오에게 이아고가 큰일이 났다고 얘기합니다.


"의원님, 문은 잘 걸어 잠그셨습니까?"

"이런, 왜 그런 걸 묻는단 말이냐?"

"아이고, 의원님, 도둑맞으셨습니다..... 바로 지금 늙고 시커먼 숫양이 의원님의 하얀 양과 배를 맞추고 있어요....."   


이아고는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와 비밀 결혼 한 사실을 요란스럽떠벌이는 거지요. 놀란 브라반시오는 이 결혼이 마법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며 일종의 청문회까지 열지만 당사자인 데스데모나가 당당하게 사랑에 의한 결혼이었음을 선언하자 브라반시오는 낙담할 뿐입니다. 게다가 베니스는 터키의 키프러스 침공을 막기 위해 오셀로 장군을 키프러스에 급파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제 무대는 키프러스로 바뀌는데 이아고의 농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자기를 제치고 부관이 된 카시오를 이용합니다. 이용뿐 아니라 그가 첫 번째 복수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이아고는 카시오가 술에 약한 걸 알고 새로운 부임지 어쩌고 운운하며 술자리를 만들어 술에 취하게 합니다. 카시오는 임무 중이라고 처음에는 사양하지만 사나이가 어쩌고 하는데 인간관계상 안 마실 수가 없어 몇 잔 마시다 보니 취해버렸습니다. 이아고는 로드리고를 움직여서 카시오에게 시비를 걸게 합니다. 술김에 결투가 되어버리는데 이아고 입장에서는 둘 중에 하나가 죽으면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로드리고는 친구처럼 지내지만 그는 데스데모나를 짝사랑해서 이아고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며 돈을 바치고 있는 중입니다. 돈을 더 이상 뜯어내기는 틀렸고 이아고에게는 이제 귀찮은 존재이지요. 카시오가 죽는다면 자기 수고 없이 완벽한 복수가 되겠고요.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다가 어느 귀족 하나가 칼에 찔려 부상을 당합니다. 소란을 듣고 오셀로가 나타나는데 이아고는 카시오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것으로 보고합니다. 새로운 부임지에 와서 전투를 앞두고 부관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으니 오셀로는 당연히 카시오를 면직시킵니다.


카시오는 술이 깬 후 후회막급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아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아고가 카시오에게 말하기를 착한 데스데모나에게 가서 청원을 해보라고 합니다. 이아고는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만나는 장면을 오셀로가 보도록 연출합니다. 오셀로의 성적 질투심을 자극시켜서 의심을 하게 하려는 의도이지요. 오셀로가 처음으로 의심을 갖게 하는 장면입니다.


"하, 저건 아니야."

"자네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군님, 혹시. 아닙니다."

"저건 카시오 아닌가? 방금 우리 집사람과 헤어진 놈 말이야."

"카시오라고요? 장군님, 그럴 리가요, 아니겠지요. 저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몰래 빠져나가다니요.

장군님 오시는 걸 보고 말입니다."


마지막 이아고의 말이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 말이 확실하다는 의미로 들리게 합니다. 이제 점차로 그 의심의 강도를 높이게 합니다. 카시오의 상황을 듣고 착한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에게 카시오를 변호하며 방면해달라고 조릅니다. 의심을 키워가고 있는 오셀로에게 그 얘기가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오히려 더욱 의심을 하게 될 뿐입니다. 그 과정을 여기 전부 쓸 수는 없지만 오셀로는 성적 질투심에 점점 미쳐갑니다. 이아고는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물증을 찾다가 데스데모나가 흘린 손수건을 자기 아내가 가져온 걸 우연히 보고 그걸 빼앗습니다. 이아고의 독백입니다.


"이걸 카시오의 숙소에다 흘려야지. 그리고 그놈이 이걸 보게 하는 거야. 공기같이 가벼운 것도 질투에 사로잡힌 놈에게는 확증이지."


오셀로의 의심은 점점 확증이 되어가는데 흥분한 오셀로는 이아고의 목을 조르며 확증을 가져오라고 다그칩니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의 손수건 얘기를 합니다. 오셀로가 자기가 아내에게 준 첫 선물이었다고 하니 이아고는 카시오가 그것으로 턱수염을 닦고 있는 걸 봤다고 합니다. 택도 없는 증거조작이지만 이성을 잃은 오셀로의 마음을 흔드는 결정적 물증이 되어버립니다. 그 후에도 오셀로의 심리를 흔드는 교묘한 작업이 계속됩니다. 드디어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고 이아고에게 독약을 구해오라고 하는데 이아고는 한술 더 떠서 독약을 쓰지 말고 카시오가 더럽힌 침대에서 목을 졸라 죽이라고 합니다. 카시오의 처치는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합니다.


이아고는 로드리고를 다시 부추겨서 카시오를 습격하게 합니다. 하지만 카시오의 역습을 받아 로드리고가 쓰러집니다. 카시오도 이아고의 칼을 맞지만 상처만 입습니다. 한편 오셀로는 침대에 잠든 데스데모나의 목을 졸라 죽입니다. 나중에 이아고의 아내가 진상을 밝히자 사실을 알게 된 오셀로는 회한에 차서 자책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이아고는 자기 아내 에밀리아마저 칼로 찔러 죽입니다. 정작 이아고는 살아남습니다.  오셀로의 칼에 찔려 부상을 당할 뿐인데 진짜 악은 살아남는다는 뜻일까요? 이아고는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 따위는 없는 인간입니다. 자기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지독한 수단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망설임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셀로가 명예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아고의 마음은 짐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악마 같은 인간이 실제 세계에도 가끔 있습니다. 개인적인 욕망이나 보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말입니다. 살면서 이런 악인은 안 만나야 합니다. 만나게 되는 경우는 그 악마를 알아봐야 되겠지요. 오셀로는 악마 이아고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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