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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Mar 09. 2019

간신의 모습

폴로니어스를 아시나요?

셰익스피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햄릿>에 나오는 인물 폴로니어스는 햄릿의 부왕을 살해한 클로디어스 왕의 심복입니다. 그는 크게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모습과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지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에서 항상 윗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누구나 보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갑니다. 대부분 을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갑의 입맛에 맞추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간신처럼 처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클로디어스 왕에게 폴로니어스는 입안에 혀와 같은 신하입니다.   


간신은 주군이 원하는 말만 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대개 그렇지 않나요? 대부분의 보스는 아부를 좋아합니다. 진정한 아부는 그것이 아부의 티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합니다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옳은 얘기를 하더라도 그것이 보스가 원하지 않는 답이라면 반복될 경우 아랫사람은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었던 세종도 충신 김종서가 사헌부에 있을 때 자기 형인 양녕대군의 패륜에 대해 법대로 강하게 처벌하자고 간언을 계속하자 곤장을 수십 대나 치게 하고 좌천시켰다는 거 아닙니까. 한두 번은 그래 그대 말이 맞지만 형제간에 반역죄도 아닌데 그럴 수는 없네라고 세종이 양해를 구하지만 김종서는 굽히지 않고 정의 실현을 외치고 또 외쳤던 거지요. 조직에서는 옳은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반드시 출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유형이 출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기 위해 나쁜 것조차 좋은 것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하게 합니다. 주인이 아부를 좋아하고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부하 역시 어둠에 빠집니다. 조직원이 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해서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밖에서 보면 뻔하게 보이는 일이 안에서는 간신의 교묘한 언변으로 변형되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실제 세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보스는 대체로 똑똑한 사람이 되기는 하지만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도 가끔은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보스는 대체로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간신은 자기 보스의 스위트 스폿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같은 주인을 모시는 사람들은 동료로 함께 일을 하게 되지만 주인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경쟁하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동료를 공격하고 음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간신도 본성적으로 나쁘고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난세가 아니면 그들은 오히려 경쟁력 있는 생활인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이 자식 교육에 더 열성적이고 가족들에게 더 잘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자기와 자기 가족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폴로니어스가 프랑스로 유학 가는 아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시지요.


"...

남과 싸우지 마라. 하지만 일단 싸우는 이상은

그놈이 다시는 덤벼들지 않도록 단단히 해야 한다.

누구의 말이나 잘 들어주되, 무조건 동의하지는 말아라.

네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옷은 비싼 것을 선택하되
허세로 보이지 않게 해라. 값지되 화려해서는 안된다.

...

돈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마라.

빚을 주면 돈도 사람도 모두 잃게 된다..."


장문이라 약간 줄여서 인용했습니다만 원래 대사에서도 버릴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지요? 혹시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하는 얘기는 아닌가요? 아니면 여러분이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얘기인가요? 폴로니어스는 확실히 우리들의 모습에 가까운 간신입니다. 세상에서는 간신 성향의 사람이 가장 비호감으로 취급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틀림없이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보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쓸개도 빼놓고 다니는 사람이 실제로 윗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는 걸 보면 세상이 싫어지지 않나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 양식을 따라 할 수는 없지요. 그런 사람도 인간의 한 가지 유형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단 그들의 음해에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들이 싫다고 해도 나와 관계있는 위치에 있다면 어느 정도 협조하며 잘 관찰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가르침은 잘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면 객관적인 눈으로 애정을 배제하고 쳐다볼 뿐입니다. 싫다고 해서 적대시하거나 관심 자체를 꺼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영원히 같이 가야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만남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싫지만 약간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그런 사람의 의도를 알아야 당할 일도 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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