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기정 Mar 01. 2019

셰익스피어와 창의력

정치를 바라보는 방식

셰익스피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수백 년 이상 된 고전이 대개 그렇듯이 약간 따분하고 무겁게 느껴지시나요.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은 어린이 동화 버전이나 영화로도 많이 다루어지고 유명한 대사가 많아서 스토리를 많이 알고 계시지요?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계실 겁니다.


셰익스피어는 보면 볼수록 특별한 점이 많은 작가입니다. 작가의 창작활동은 어떤 일보다도 창의력을 필요로 합니다. 더군다나 셰익스피어처럼 많은 작품을 쓰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창의성에 시비를 걸었던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조지 버나드 쇼인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남들을 따라갈 때만 훌륭한 작가다". 셰익스피어가 많은 작품을 쓸 때 소재를 차용한 사실을 비꼰 것이지요.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대부분 작품은 역사나 설화,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 소재를 차용해 왔습니다. 오히려 순수하게 소재 자체까지 창작을 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스토리의 참신함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쓰는 태도는 상당히 독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작가이면서 극장의 공동 경영주였습니다. 연극을 무대에 계속 올리려면 새로운 작품을 일정한 간격으로 써야 합니다. 그는 일 년에 평균 두 편 정도의 작품을 썼는데 극장 경영에 참여하면서 이런 정도의 작업을 한다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가 창의성을 위해 택한 방법은 소재는 가져오되 그 소재를 바라보는 방식에 독특한 시각을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창의력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련이 많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창의력의 출발점이라는 것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창의력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그의 정치적인 시각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주로 사람과 사건,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말합니다. 작가는 자기 개인적인 의견을 명확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판단할 수 있게 여지를 남깁니다. 실제 세상 일과 똑같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찬성과 반대가 대체로 50 퍼센트에 가깝지 않습니까? 셰익스피어는 인간 세상의 양면성에 대해서 대단히 뛰어난 통찰력을 가졌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세상사에는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가르쳐 줍니다. 그는 전제 군주제 시대에 살았지만 그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를 초월한 식견을 보여줍니다.


<줄리어스 시저>는 셰익스피어가 쓴 가장 유명한 로마 사극인데요, 시저의 암살을 둘러싸고 시해에 가담한 세력과 시저의 지지파 사이의 권력싸움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공화파는 시저가 정치적으로 너무 막강해서 황제 체제로 갈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암살을 모의하고 결국 시해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독재체제를 막으려던 공화파가 줄리어스 시저의 조카이며 후계자인 옥타비우스 시저 진영에 패하고 황제 체제가 더 빨리 시작되는 계기가 되지요. 셰익스피어는 정치체제에 관계없이 - 군주제이든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가까웠던 로마의 공화제이든 - 정치권력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절묘한 것이 이 작품의 첫 장은 시민의 대표인 호민관들이 시저의 개선을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을 핍박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공화제 자체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호민관들은 오늘날 우리의 국회의원과 같이 투표 시에만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하고 나중에는 시민의 권익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보이는 장면도 연출합니다. 물론 군주제가 우월하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정치체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꽤 많은 사극을 썼는데 사극이란 대부분 정치와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고 주인공은 대개 군주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일반 시민과 하층민들의 생각입니다. 군주는 잘하다가도 한 번의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되면 실패한 왕이 될 수 있는 반면에 일반 백성은 대개 무식하지만 가끔은 군주의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군주의 잘못과 일반 백성의 실수는 그 무게가 같을  수 없습니다. 중세에 살았던 작가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권력에 대한 속성을 그리 꿰뚫어 볼 수 있었는지 신기합니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셰익스피어는 정치적 분석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정치나 권력을 파악하고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인 인간 본성은 4-5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권력을 해석한 방식은 현대적 시각으로 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전제 군주제 하의 작가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작품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특히 사극이나 왕을 출연시키는 작품의 경우 주제나 내용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놀라운 점이 꽤 많은 작품에 왕을 출연시키면서도 정치적 핍박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셰익스피어가 왕이나 귀족 층을 찬양하고 아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귀족층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 양면성을 나타냅니다. 모호하게 해석되도록 기교를 부린 것은 사실이지만 귀족층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비판하며 보통 사람의 시각을 늘 대조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소재가 무엇이든 균형감을 가지고 양쪽 주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독자는 모호하고도 상반되는 양면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개는 나중에 무엇이 옳은지 눈치를 채게 됩니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진리를 품위 있게 얘기하는 방법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진가를 발휘한 창의성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멍청한 남자와 똑똑한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