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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Feb 24. 2019

멍청한 남자와 똑똑한 여자

셰익스피어의 여성관

문학에 있어서 가장 흔한 주제는 사랑이겠지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37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역시 '사랑'이라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대개 남자가 의리도 없고 판단력이 빈약하며 질투가 더 심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반면에 여성은 인내심이 강하고 용기가 있으며 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유럽 사회가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연극에서 여성의 역할도 남자아이 배우가 담당했던 시대였으니 말입니다.  


국의 마초 성향의 영화를 보면 대개 외모가 매력적인 여성의 사소한 어리석음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이를 남자 주인공이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중세의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여성관이 오늘날의 미국보다도 선진적인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신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고 주관이 뚜렷합니다. 사랑의 헤로인으로 유명한 줄리엣이나 클레오파트라는 말할 것도 없이 셰익스피어의 사랑극은 여자 쪽에 조금 더 비중이 주어집니다. 인간적으로 너무 하다 싶을 정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은 주로 남자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 중 사랑 앞에 가장 어리석은 남자가 누구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 중 <심벌린>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브리튼의 공주 이모젠 Imogen입니다.  이모젠의 남편은 포스튜머스 Posthumus인데 이 작품은 이 둘 사이의 사랑을 두고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포스튜머스는 익명이라는 뜻도 있으니까 작가는 별 존재감 없는 남자의 이름으로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포스튜머스는 평민 출신이라 공주의 남편감으로 심벌린 왕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심벌린 왕은 재혼을 했는데 새 왕비는 클로튼이라는 아들을 데리고 왔고 그를 왕위 계승자로 삼으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좋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심벌린 왕은 이모젠이 좋아하는 포스튜머스를 추방하고 클로튼과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포스튜머스는 동정을 받아야 마땅한 처지인데 동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심벌린 왕의 어리석음보다도 포스튜머스는 더 심한 어리석음을 보여주기 떄문입니다.


포스튜머스는 추방당한 후 로마로 가는데 거기서 외국인들과 어울리던 중, 이탈리아인 야키모가 엉뚱한 내기를 걸어옵니다. 포스튜머스가 아내의 자랑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브리튼에 있는 자기 아내의 미모와 함께 정조까지 자랑한 것이지요. 아내의 정조라는 것이 자랑 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야키모가 듣고 있다가 그런 포스튜머스가 눈꼴사나웠는지 자기가 이모젠의 정조를 빼앗아 보겠다고 내기를 겁니다. 이게 내기가 되나요? 남자들은 하기는 가끔 이런 종류의 엉뚱한 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교묘한 언변으로 상대가 도발을 해오면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 도전을 꺾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지요.


야키모는 포스튜머스에게 소개장을 써달라 해서 브리튼으로 이모젠을 찾아갑니다. 그는 이모젠에게 상자를 하나 맡아달라고 하며 보물 상자라고 합니다. 이모젠은 자기 방에 그 상자를 두게 하는데 야키모는 상자 안에 숨어 있다가 밤에 잠든 이모젠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는 이모젠의 침실과 이모젠의 신체상 특징을 관찰하며 메모를 합니다. 그리고는 반지와 팔찌를 벗겨 냅니다. 이제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갑니다. 야키모는 포스튜머스를 만나서 내기에 승리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먼저 이모젠의 침실을 묘사합니다. 포스튜머스는 누군가 얘기해줄 수도 있으니 그건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야키모는 팔찌와 반지를 정표로 받았다며 결정적인 증거라고 제시합니다. 포스튜머스의 마음이 흔들리며 질투심이 불붙기 시작합니다. 같이 있던 프랑스인이  그건 누가 훔쳐서 줄 수도 있으니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야키모는 이제 이모젠의 가슴에서 본 앵초 꽃 같은 붉은 점을 얘기합니다. 포스튜머스는 순간 수컷의 성적 질투심에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요? 포스튜머스는 화가 나서 급기야는 브리튼에 있는 자기 하인인 피사니오에게 이모젠을 죽이라는 편지까지 보냅니다. 하인인 피사니오는 편지를 보고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즉시 알아차립니다. 이탈리아인의 간계라는 걸 눈치챈 거지요. 충실한 피사니오는 이를 이모젠과 상의하고 이모젠으로 하여금 포스튜머스를 찾아 나서게 합니다. 이모젠은 이후 온갖 역경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모젠은 그런 멍청한 남편에게 실망도 했지만 그를 인내와 사랑으로 감싸고 용기 있게 난국을 헤쳐나가며 결국은 포스튜머스가 진실을 깨닫게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진실을 알게 되는 이 남자를 보면 같은 남자로서 정말 창피합니다.


어리석은 남자가 있으면 어리석은 여자도 있을 텐데, 셰익스피어는 대체로 남자를 조금 더 어리석은 인간으로 묘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더 살펴보기로 하지요.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이렇게 엉뚱하게도 판단력이 흐려지며 어리석은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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