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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밥 해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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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파노 Sep 18. 2019

밥? 한국에 있을 땐 안 했다.

보츠와나가 새로운 취미를 주었다.


 보츠와나에 살며 가장 많이 찾게 되는 곳은 단연코 마트다. Spar, Shoprite 등 남아공에 본사를 둔 대형 마트들이 전국에 위치해 있다. 파는 물건이나 가격도 거의 비슷해서 어딜 가나 비슷하긴 하다. 한국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아니면 롯데 마트 등 각 마트가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특별한 물건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수도에 가면 물건의 다양성이나 품질이 훨씬 높아서 쇼핑할 맛이 더 사는 것은 사실. 똑같은 크기와 똑같은 포장의 티본스테이크가 수도와 몰레뽈롤레 모두에서 팔리지만 신선도에서는 차이가 많이 난다, 가격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고기 상태가 아주 좋았지만, 항상 이렇게 신선하지는 않다.
이건 쿠두 고기다. 쿠두는 사슴과 인 것으로 알고 있다. 크기가 소에 비슷해서 그렇지...


 초반엔 이국적인 식재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살 게 없어도 마트에 들렀다. 한국에서도 '안 먹어 본 걸 우선 먹는다'라는 까닭 없는 고집이 있어서 식당에 가든 마트에 가든 낯선 음식이나 재료가 있으면 자주 시도해 보곤 했다. 낯선 이름의 음료수들과 처음 보는 향신료 등을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오x기 카레 같은 카레 말고, 정말 인도인 사람들이 먹을 것 같은 카레 가루를 사다가 카레를 해보기도 했고, 비트루트나 버터넛 같은 낯선 채소류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들은 대체로 실망이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아마도 결정적인 이유겠지만, 만드는 사람의 경험 부족 탓이다. 못 먹어본 음식을 만드는데 어떻게 그게 맛있을 수 있겠나.



 요즘 제일 자주 해 먹는 건 알리오 올리오인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알리오 올리오를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먹을 땐 건더기가 푸짐한 음식을 시키는 게 상식 아닌가? 가격 차이는 몇 천 원 차이 안 나는데 알맹이라곤 마늘 밖에 없는 알리오 올리오 같은 걸 누가 시켜먹는단 말이냐. 그래서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란 어떤 맛이 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사 먹는 사람에서 해 먹는 사람이 되니 알리오 올리오는 재료도 제일 간편하고 만들기도 쉬웠다. 적어도 그렇다고들 한다. 이딸리안 클래식이라니, 이게 베이식이라느니 실없는 소리까지 붙여가며 자주 해 먹게 되었다. 내가 만든 음식이고 나 혼자 먹으니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먹기는 한다만 이게 맛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 요리사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는 어떤 맛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12월에 잠시 한국에 돌아갈 때 꽤 비싼 식당에 가서 알리오 올리오를 먹는 걸 계획해 두었다. 대전엔 비싼 식당도 몇 개 없다지. 친구 만나는 김에 서울까지 가 봐야겠다.

알리오 올리오 1
알리오 올리오 7
알리오 올리오 11
알리오 올리오 17

알리오 올리오가 무슨 맛인지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가 맛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다시 보츠와나의 마트로 돌아와, 진열을 참 잘해 놓는 걸 알 수 있다. 추측인데, 소수의 제조사가 과독점 하고 있는 탓에 깔맞춤이 쉬워서 그런 것 같다. 잠비아나 짐바브웨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남아공에 본사를 둔 거대 기업들이 남부 아프리카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레가노, 코리엔더, 타임, 로즈메리 등 다양한 향신료를 저렴한 값에 구할 수 있다. 한 꼬집의 향신료만 넣어줘도 스테이크의 맛이 확 산다. 생 타임, 생 로즈메리 등을 넣으면 더 확연하게 맛이 좋아지는데, 수도가 아니면 구하기 어렵다. 수도에 놀러 가면 한 팩 사다가 냉동실에 얼려두고 쓰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많아지게 되었을까...


 냉장고는 채워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많이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혼자 먹어서 얼마나 많이 먹겠나. 양상추 같은 걸 한통 사도 반도 못 먹고 버리게 되는 일이 태반이다. 적게 사서 2~3일 이내에 먹어 치우려고 노력하지만 여기는 한국처럼 소분해서 팔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양배추 1/4토막처럼 1인 가구에 맞는 식재료는 구하기 어렵다. 항상 통이다. 냉동을 시키면 오래 보관이 되겠지만 보다시피 아주 작다. 고기 몇 덩이를 넣어두면 금세 꽉 찬다.

10명이 넘는 손님이 올 때나 냉장고가 이렇게 찬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 탕수육을 만들어 줬었다. 소스가 밍밍해서 아쉬웠는데, 튀김은 바삭하게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고기 하나는 정말 저렴하기 때문에 소 등심으로 탕수육을 만들었다. 보츠와나에서 돼지고기와 소 고기의 지위는 동등하다.

처음 해본 탕수육. 실패였다.


 라따뚜이를 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라따뚜이를 먹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구를 초대해놓고 간편하면서 비주얼 좋은 요리를 고민하다 라따뚜이를 했는데, 만들어 놓고도 잘 된 건지 아닌지 판단할 방법이 없었다.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을 만들어 놓으니 별 수 있겠나.


 얼마 전에는 일본인 친구들, 자이카로 보츠와나에 봉사를 나와 있는 친구들을 초대했었다. 일전에 이미 초대를 받은 바가 있어 답례 겸, 주말에 다른 한인 봉사자들과 함께 초대를 했었다. 우리 집에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니 복작복작하고 즐거웠다.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짬뽕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지.




 해산물이 없는 게 아쉽다. Land-locked 나라라서, 땅과 땅 사이에 갇혀 있는 나라라 해산물은 전량 수입일 것이다. 가끔 새우나 오징어가 당겨서 찾아보긴 하지만 현지 spar에서는 구하기 어렵고, 냉동고에 있는 몇 종류 안 되는 해산물들은 상식 밖으로 비쌌다. 그나마 중국인 마트가 있어서 여기서 연어도 사고 새우도 사는 등 냉동 해산물을 구할 수 있다.

감자가 다 타버리긴 했지만 연어는 살렸다. 치미츄리 소스가 잘 어울렸다.
중국 마트에서 2만 원어치 냉동연어를 샀는데, 한참을 실컷 잘 먹었다. 중국 마트가 없었으면 보츠와나에서의 삶이 훨씬 더 팍팍했을 것 같다.




보츠와나란 곳은 맛집은커녕 KFC 조차 맛이 없는 나라다. 수도에 가면 몇 군데 맛있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몇 군데다.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정도. 식도락이 정말이지 어려운 나라다. 오죽했으면 직접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을까. 30년 가까이 주는 밥과 사 먹는 밥만 먹던 사람이었는데.


유튜브에서 승우아빠 채널에서 보고 배웠다. 치미츄리 소스 + 감자 폼 퓌레. 근래 해 먹은 것 중 가장 맛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mdX5NiSHJQ

http://kopanobw.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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