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당시 ,회사로부터, 일정 월급을 태국 바트로 받고, 비행할때마다 per diem (퍼디움, 비행수당)을 받으며 생활했다.
남은 금액은 잘 모아두었다가, 한국에 비행갔을때 환전을 하여, 친정으로 송금을 하는 형태였다.
한동안 한국비행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있더라도,한국에 밤늦게 도착하거나, 이른 아침 나와야해서 은행갈 타이밍이 안되다보니, 갖고있는 현금이 많았었다.
대략 300만원정도...(30년전 300만원은 지금의 얼마정도이려나?)
하루는 한국비행을 준비하며 분주한 상황이었다.갑자기 누가 방문을 노크했다.
오피스텔 세탁소에 맡긴, 회사유니폼을 갖고온 것이다.
그녀는 세탁소 직원이 아니라, 오피스텔에서 각종 청소등을 담당하던 직원이었다.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다보니, 꽤 친해진 사이였다. 언제나 방긋방긋 밝은 미소로 반겨주며 소소한 심부름도 척척해주는 그녀였다. 그모습이 고마워, 나는 한국비행을 다녀올때면 각종 과자나 음식등을 나눠주기도 하는등, 친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탁소 직원이 내방으로 세탁물 배달하는걸 발견하고, 굳이 그녀가 대신 해준다며, 자청하고 들고온 것이다.
당시 나는 세탁비를 건네주어야 했는데, 마침, 현금이 거실 보석함 상자안에 들어있었다.
그녀가 현관안에 들어와 있는데, 잠깐 나가라고 굳이 문닫는게 순간 미안했고, 기다리라며 보석함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누가봐도 보석함에 돈이 있음이 인정되는 순간인데, 이제와 생각하니 당시 내가 참 어리석긴 했었다.
당시 보석함에는 300만원 정도의 돈이 있었는데, 마침 뒷날 비행이 주말이라, 한국에 갖고가도 송금을 못할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이 되었으나, "설마 그녀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올수나 있겠어? ""아냐! 호텔 house keeping처럼 청소하는 사람들은 마스터키가 있을지도 몰라?" "그런다고 한들.. 저 사랑스런 그녀가 설마 나에게 그런짓을 하겠어? "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리를 헤집고 다녔다.
그렇다고 저 큰돈을 핸드백에 넣고 다니기도 찝집해서, 결국 나는 쿨하게 그냥 비행을 나섰다.
무서운게 여자의 직감인지, 비행하면서도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애써 태연해보려 노력하며 1박2일의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보석함을 열었다.
그런데......
그렇다!!! 텅 비어있었다!! 믿을수 없었다 !! 벼락맞은 느낌으로 한동안 서있다가 관리실 지배인을 찾아갔고 그녀를 불러달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 그녀가 지난 주말, 아기가 아프다며 그만두었고, 고향으로 갔다고 한다. 물론 당시 전화번호 따위는 없었다.
지배인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며, 그녀가 내방에 들어올수 있는 마스터키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살짝 고민하던 지배인은 "마스터키가 있다!"라고 무겁게 대답했다.
"그게 말이 되느냐? 우리가 어떻게 집에 귀중품을 두고 다닐수 있냐? 라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비상상황을 대비하여 필요하며, 딴 오피스텔도 똑같다! 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였다. 당시 더이상 내가 할수 있는게 없었고, 가슴이 벌렁거려 싸울수도 없었다. 더구나 말도 제대로 안통하는 외국에서, 혼자 시시비비 가리기에 나는, 너무나, 매우 어린 사회초년 baby 였다.
일단, 그녀가 취직할때 남겨두었다는 그녀의 고향 집주소만 덜렁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곳도 방콕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이름도 생소하고, 어찌가야할지도 모르는 시골 마을이었다.
간다고 한들, 태국어도 못하는 내가 대화는 어찌하며, 또 일처리는 어찌 한단 말인가?
그녀가 잡아때면 또 어찌할건가?
고민하던, 나는 친한 태국 승무원에게 전화하여,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일단, 그녀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30년전 당시, 그것도 태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화도 안되는 외국인에게 섬세하게 문제해결을 해줄것이라는 기대 부터가 잘못된것이었다.
1. 일단 경찰에 전화를 한다!
2. 영어 가능한 직원을 바꿔달라고 한다!
( 이마저도 못알아들으니, 아는 태국어 온통 짜집기하며 발광을 해야한다)
3.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다. 그래도 계속 못알아듣고 "wait please ! 만 외치다가 담당자가 없다!
이런식으로 반복되며 통화가 안되었다.
점점 지쳐갔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고, 이런식의 문제해결을 반복하기엔 내가 자꾸 피폐해졌다. 방글거리며 이뿌게 웃던 그녀이기에 배신감도 컸고, 믿을수 없었지만, 좋은일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3개월 정도 지난 어느날, 그녀가 찾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통곡하며, 무릎을 꿇는다. 덩달아 흥분한 나는, 태국어를 꽤 잘했던 동료언니를 급히 불러 통역을 부탁했다.
그녀가 고백한 바로는, 당시 5살 아들이 담벼락에서 떨어져 척추를 심하게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고, 돈이 급하게 필요했었고, 그래서 내 보석함이 생각났고, 그래서 훔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돈이라며, 50만원 정도를 내게 내밀었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말들이 사실일까? 하필 내 보석함을 본 다음날, 아들이 다쳤다는게 말이 되?" "그냥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날 찾아와 사죄하는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 생각으로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결국 그녀를 놓아주기로 했다. 믿어주기로 했다.
그녀를 유치장에 넣은들 과연 내 마음이 어찌 편하리오?
'태국회사'에서 번돈이니, '태국사람'에게 이정도 베풀수 있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그녀의 아들도, 35세 정도 되었을 터이고, 결혼을 해서 또하나의 가정을 잘 이루었을수도 있고,,,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을까?
훔친돈으로 흥청망청 탕진한거 보다는 아들의 치료비에 잘사용하여 완쾌되었다면 그또한 흐뭇한 일인거쟎아.... 라며 괜시리 웃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