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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Jan 20. 2023

제주 울어멍의  '수박된장냉국'

'단짠의 콜라보'

퇴직한 작년 여름, 제주도 친정에서 부모님과 두어 달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 엄마가 차려준 식탁을 바라보니, 국그릇에 곱디고운 핑크빛이 가득한 거였다.

"오잉! 이게 뭐야? " 라며 들여다보니 수박의 빨간 살들이 된장냉국에서 수줍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수박과 짙은 녹색의 오이까지 채 썰어 넣으니, 위 사진보다 색감이 참으로 고왔다.)

 


옛날 수박 먹고 남은 하얀 껍데기 부분을 아까워서 나물처럼 새콤달콤하게 무쳐먹은 기억은 있어도, 이렇게 빨간 살들을 통째로 국에 넣은 형태는 처음 보았다. 그래서 "엄마! 도대체 아까운 수박에 뭔 짓을 한 거야?" 라며 살짝 흘겼다. "먹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라! 얼마나 맛있는지... 너희 엄마는 '요리 개발자'야" 라며 친정아버지는 국그릇을 아예 손으로 들고 열심히 드시는 거였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수저를 들어 맛을 보았다.

워낙 나는  제주식 '된장냉국'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국물맛은 늘 알던,익숙한 냉국 맛이었지만, 거기에 추가된 수박의 달콤한 단맛과 식감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요새 우리가 좋아하는 단맛과 짠맛의 치명적 어우러짐... 이걸 '단짠의 대환장 파티'라고 하면 너무 오버일레나?"  


"엄마! 어떻게 이런 무모한 요리를 생각한 거야? 대단해! 은근히 맛있어" 라며 나는 어느새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었다. 엄마는 "내가 창작한 음식은 아니고, 내 친정에서는 옛날부터 이렇게 먹었어. 참외도 된장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라며 한술 더 뜨시는 거였다.

엄마의 친정은 바다가 아름다운 '중문'쪽인데, 주로 해안가 마을에서 이런 음식을 드셨다는 것이다.


손바닥만 한 제주도이지만, 먼먼...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서로 왕래가 쉽지 않았으니, 신기하게도 도민끼리도 서로 모르는 음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같은 음식이어도 명칭이 다르거나, 송편 사이즈 크기나 모양 이 달라지는 걸 보며, 신기해한 적이 있긴 하다.

    

     


여기서, 잠깐!! 혹여라도 위 음식을 도전해 보려는 독자분이 계실 수도 있으므로, "제주의 된장'에 대해서 설명하려 한다. (위 '수박냉국'은 '제주된장'이어야만 가능하고 육지된장과는 맛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결혼 후, 요리를 하며 시어머니가 주신 된장이나, 사 먹는 된장으로는 내가 어려서 맛보던 된장국맛이 도저히 나질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고, 그저 내가 친정엄마 음식에 길들여 져서 그런가 보다 하며, 친정엄마에게 된장을 보내달라 하였다. 당시 엄마는 "시어머니 된장 먹어야지, 친정엄마 된장 먹으면, 잘 못 산다!"라는 허무맹랑한 말씀을 하시며,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의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라는 대답을 원하셔서 그러셨던 걸까?ㅎㅎ.) 된장을 보내시곤 했다.


역쒸!!! 엄마 된장은 만병통치약이었다. 아이들은 "엄마! 이 된장국 먹으면, 마치 외할머니 집에 간 느낌이야!"라며 엄지 척 이었고, 소위 육지남자라는 남편도 장모님의 제주 된장국을 매우 좋아하였다.

행여, 된장이 떨어지면 빨리 할머니께 전화하라며 애들은 재촉했다.


과거, 내 어릴 적 제주에서는 '된장찌개''청국장''고추장''초장' 이런 종류를 굳이 구분하며 만들지도 먹지도 않았다. 늘 밥상 위에는 '제주식 된장'하나가 필수적으로 자리를 차지하여, '고기''회'등에는 양념장으로서 혹은  야채를 위해서는 소위 '드레싱'의 역할까지 해대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육지된장'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된장냉국'도 삶은 나물이나 오이 ,삶은가지, 혹은 수박 참외까지 넣어 '휘휘' 저으면  손님상에도 손색없는 시원한 국이 탄생하는 거였다.


여름에 제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고추장이 아닌 된장 베이스의 '한치물회'나 '자리물회'등을 보고   

 처음엔 살짝 당황하지만, 곧 그 매력에 빠지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제주로 시집온 나의 손아래 '서울여자 '인 '올케'도 처음엔 된장물회를 보며 '뜨악'했지만, 이젠 제주음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제주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제주에서 20여 년을 산 나의 올케가 나에게 '제주식 된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나는 아무래도 가짜 제주 여자인 거로.. ㅎㅎ)


제주된장의 특징은 끓이거나 조리해서 먹을 때보다, 날된장으로 찍어 먹거나, 물에 풀어 먹을 때 더 맛있다고 한다.


그 주요 이유로...


첫째,  제주에서 생산되는 옹기는 유약을 거의 바르지 않아 표면이 거칠고 얇으며, 유약도 천연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통기성이 우수하니, 내용물이 쉽게 상하지도 않고 냄새도 쉽게 빠져나가 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그래서 울집 항아리가  윤기도 안나고 빛깔도 안이쁜거였구나 ..)


 둘째, 제주의 한라산으로부터 모아진 천연지하 암반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하여, 이상적인 된장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제주 삼다수의 위력!!!!)


셋째, 전국에서 습도가 가장 높고, 겨울에도 영하로 잘 안 떨어지며  일조량이 풍부하다는점...

수시로 불어대는 제주의 바람은 더운기운을 한 곳에만 머물지 않게 하여 된장맛을 배가 시켜 준다는 것이다.


넷째. 1년 동안 발효시키는 '육지된장'에 비해 7-8개월만 발효시키므로  냄새도 적고 빛깔도 고와, 미관적인 이유로 '된장'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환영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더욱더 많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제주에서, 관광의 묘미를 더욱 상승시켜 주는  소위 '로컬음식'을 맛봄에 있어 그 근원이 되는 '제주된장'의 hidden story  정도는 알고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주절거려 봅니다. '제주인'에게 된장은 라면스프처럼 실패한 음식도 때론 살려주는 귀한 존재이니까요 ㅎㅎ.


   

참고로 찾아보니,,수박냉국이 원래 없는 음식은 아니네요..단지 된장베이스가 아닌?간장베이스로 만든 백종원님의 요리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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