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밍줌마 Sep 04. 2022

안개 때문에 가슴 졸였던 나의 결혼식

제주 결혼풍습 1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97 년  어느 날, 내 결혼식은 시댁이 있는 '인천' 모 예식장 오전 11시로 잡혀있었다.

제주가 고향인 까닭에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 약 50여 명의(부모님 포함) 제주 친지분들은 오전 7시 비행기로 예약이 되어있었다.


7시  제주 출발(첫비행기) , 8시 김포공항 도착, 김포공항에 미리 대절한 관광버스 탑승후 인천 예식장 도착 (넉넉잡고 2시간 예정), 9-10시 예식장 도착, 11시 예식 시작... 이것이 우리가 계획한 결혼식 시나리오였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나와 남편은 지정된 미용실에서 신부화장 머리손질 등으로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정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포공항의 짙은 안개로 인하여,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 언제 걷힐지 모르니 출발시간도 알 수 없고, 50여 명 친지분들이 제주공항에서 마냥 기다리는 중이라 했다.   


헐,,,, 이건 정말 상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인천 예식장에 전화하여, 결혼식 시간을 좀 미룰 수 있냐고 했지만, 토요일이라, 한 시간 간격으로 예식이 계획되어 있으니 '절대 불가'라고 하였다. 안개가 걷힐 수도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좀 기다려보자고만 하였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고,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나가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으로 신부화장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서울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와 남편이 인천 예식장으로 출발을 한 게 9시 20분 정도였고, 마침  제주에서도 안개 상황이 좋아져서 곧 출발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힘들었으니, 애가 더 탔던 거 같다.)


다시 머릿속 계산이 복잡해졌다. 9시 30분 출발한다고 가정하면, 10시 30분 김포공항 도착, 모두들 수속한 짐은 없다고 하니(짐 찾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있던 짐도 공항에 다 맡겼다고 함),

비행기에서 내려서, 관광버스 타는 과정만 신속하게 진행된다면, 가까스로 제시간에 예식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0-20 분정도의 지연은 예식장에 간절히 요청해볼 생각이었다.


여기서 직업병이 나타났다. 공항에서 안개등으로 인해 항공기가 지연 도착하고, 다시 국제선 연결 등이 있는 경우, 항공사 직원이 옆에 같이 동행하며, 워키토키 등을 들고 실시간 연락을 취하며,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나는 재빨리 내가 근무했던 김포공항 항공사 사무실로 연락을 했다. (당시는 인천공항이 없던 시절이에요 ㅎ ㅎ).


사정을 얘기하고, 제주에서 비행기가 도착하면, 우리 친지분들을 동행해서 관광버스까지 최대한 빠른 속도로 탑승할 수 있도록 밀착해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 런... 데.. 돌아온 답변은......

지금 우리 항공사  비행기도 안개로 연착이 되는 바람에, 모든 직원이 출동해서 승객 핸들링 중이고, 도저히 우리 식구들을 도와줄 형편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항공기 지연 관련, 업무가 많아, 내 결혼식에 동료 직원들의 참석여부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왠지 서운하고, 슬프고, 답답하고 , 울컥하고... 막 그랬던 거 같다.  

10시 반 정도 넘어서면서, 예식장은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서울에 사셨던 큰아버지 내외분이 부모님을 대신하여, 손님맞이도 해주셨고, 온통 얘깃거리는 '안개''항공기 지연' 이런 얘기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당시 촬영된 결혼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신부 대기실에 있던 나의 모습이 온통 수심에 가득 찬 모습이라 지금도 보기가 싫다. 다행히 예식장 측에서는 여기저기 '특수상황'을 양해하여 20분 정도 예식을 지연시켜 주신다고 했다. 다만 '주례사''축가'등에서 최대한 시간을 줄여달라고 하였다.


드디어, 11시 20분 예식장 직원이 '부모님'이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왔다. 일단 부모님 먼저 차에서 내리게 한 후, 어머니가 시어머님과 함께 입장하여, 촛불을 켜고, 이후 아버지와 내가 입장하는 절차를 순식간에 치러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는 사이, 예식장 직원분들은 일사천리로 예식을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결혼식이 대충 끝나고, 그제야 제주에서 온, 친지분들 ,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고, 친정어머니는 답례품을 준비했는데, 제주공항에 짐을 다 맡기느라 못 갖고 왔다며, 서울에 있는 친지분들이나, 내 지인들에게 계속 아쉬움을 표하셨다.

예식 때는 안보였던 회사 동료들도 식당에서는 볼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친지분들을 에스코트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휴무인 직원들까지 급히나와, 모든 분들이 총동원되어 움직였기에, 그래도 20분만 지연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는 뒷얘기도 해주시는 거였다.


오전에 통화하며 느꼈던 온갖 종류의 서운함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회사애와 동료애가 불끈 솟아오름이 느껴졌다.   

그래서 난 안개만 끼면, 요즘도 결혼식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떠 오른다.


ps... 아마, 이 글을 읽다 보면, 왜 결혼식 당일, 빡빡하고 불안한 일정으로 부모님이 제주 출발을 하셨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실 거 같아요. 그건 당시 제주 풍습을 설명해야 해서, 2부에서 계속 쓰도록 할게요 ^^

작가의 이전글 비(雨)와 나, 그리고 태국 남자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