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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Aug 24. 2022

비(雨)와 나, 그리고  태국 남자 이야기

비행 에피소드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비'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여름 소나기는 별로이고, 이른 봄 '모란'이나 '벚꽃'위로 조심스레 내리는 '봄비''보슬비'를  참 좋아했다.

 행여 꽃이 떨어져 버릴세라, 조심스레 꽃망울에 '톡톡' 키스하는 봄비가 그냥 그냥 좋았다.


창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보면서 감수성도 풍부해지고, 나름 시( 詩)도 끄적이고, 문학소녀 인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사시사철 여름나라인 '태국'에 사는 건 힘들었다.


태국의 계절을 굳이 나누자면 '매우 덥고''보통으로 덥고''덜 덥고'이다.

'비'라는 것도 아열대 기후인 '스콜'이라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었다가 갑자기 그치는 등 '비의 매력'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계절마다의 풍광과 낭만을 사랑했던 섬세한 나를 '태국의 계절'은 '무감각한 여자'로 바꿔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루는 방콕 출발 홍콩 경유 서울행 비행을 하고 있었다.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환승 중, 기내 청소를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이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갑자기 빗방울이 '톡톡'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좋아하는 '보슬비'가 처연히 내렸다. 누가 틀었는지 기내에서는 '호세 펠리치아노'의 ' RAIN'이라는 노래가 기내에 울려퍼졋고 심장이 터지도록 나를 후벼 팠다.


'무감각한 여자'가 돼버린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나는 사춘기적 소녀감성으로 돌아갔고  심하게 몰입되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잠깐의 '비 멍'을 누리느라 승객들 재탑승시간이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했던 태국 남승무원이 나의 '비 멍'을 일깨우더니, "너는 비가 좋으니? 나는 비가 너무너무 싫은데.."라고 했다. 비가 오면 일단 방콕이라는 도시가 마비될 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해지고 옷이 젖고 도로가 더러워지고.. 그래서 무조건 싫다고 했다.


물론,이해가 되었다.

이런 게  날씨로 인한 문화 차이인거다. 얼마니 많은 문학작품, 영화 ,음악 등등이 계절의 영향(rain or snow)으로 탄생되던가?숱한 러브스토리 또한 말할나위없구요. 괜시리 이런'계절의 맛' 을 모르는,태국 사람들은 불행하다!"라고 생각했다.



타이항공 입사 후, 주변 사람들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너 태국 남자랑 결혼하면 안 돼!"라는 말을 많이 했다. 맘에 드는 남자가 있어도 '결혼'까지 하게 되면 '태국'에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에야 글로벌 세상으로 수시로 한국과 연락 가능하고 '태국'이라는 나라도 많이 발전되었기에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일단 '여름'만 있는 게 싫었다.


사시사철 '에어컨'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니, 한국의 '봄''여름''가을''겨울' 그 각각의 모습이 너무 그리울 것만 같아서 태국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철저히 선을 그었다.


 남자라고 해야 주로 만나는 게 '태국 남자 승무원'인데 서비스직 종사자라 그런지, 대부분의 그들은  매너도 좋고 핸섬하고 친절했다. 남성적인 매력보다는, 다소 여성스러움이 우세한 요새 아이돌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직업끼리는 매력을 못 느낀 건지, 아니면 '태국'에 영원히 정착하진 않으려는 의지 때문인지 내 맘 한구석은 늘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외국'에 살아서인지 '한국 남자'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예쁜 남자'보다는 서글서글한 눈매에 과묵하고 남성다움이 '뿜 뿜' 느껴지는 그런 '한국 남자'를  정말 만나고 싶었다. 


위에 언급된 ('비 멍'을 일깨워준)  남자 승무원이 그나마 체격 좋고, 쓸데없이 수다스럽지 않고, 대화가 잘돼서 친해진 친구였는데, 홍콩에서의 '비' 사건 이후에 다시 애매하게 멀어진 거 같다.(물론, 내가 슬며시 밀어내었다. 정들기 전에 ㅎㅎㅎ)


 실제로 '태국인'과 결혼한 동료나 후배들도 꽤 있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중 몇몇은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은 좋은데 '태국'에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아마 나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친구인 듯싶다. 그 말이 나는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몇 년이 흐르고, 결혼을 고 , 한국에서 타이항공 지상직 근무를 하였다. 비행기 도착할 때마다 같이 근무했던 승무원 동료들을  항상  만날 수 있었기에, 내가 승무원을 그만두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저녁, 설레는 봄비가 어스름을 깨고 조용히 내리는 날, 여전히 나는 공항 근무 중이었다.

그리고 도착 비행기에서 위에 언급한 남자 승무원이 도착한 것을 보았다.


그는 활짝 웃더니 내게 말한다. "I've became like rain"(나 이제 RAIN을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옛날 생각이 나서 웃음 지며 내가 물었다. "어떻게 RAIN을 좋아하게 된 거냐고?"


 그러자 그가 답했다. " I like singer 'RAIN'"이라고.ㅎ ㅎ ㅎ


가만히 생각해보니, 당시 가수 '비'가 '레이니즘'을 발표하며 동남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던 때였다.  아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가창력과 댄스로 세계를 흔들던 '비' 아닌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웃었다!


 그리고 그가 슬며시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It's nice to see you happy" (네가 행복해 보이니 좋다!")라고.






https://youtu.be/AUDPWiv28 MI  :  혹시 'rain'노래가 듣고 싶다면 들어보세요.^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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