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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Aug 23. 2022

비행기 '칵핏'에 앉아 여행 가는 이유

항공사 직원의 여행 에피소드(1)

항공사 직원의 최대 혜택은 무료항공권이다. 타이항공의 경우, 일정 근무연수를 채우면, 1년에 두 번 100% 무료인 항공권을 사용하고, 더 필요한 경우, 10% (즉, 90% 할인)만 내면 된다. 가족은 물론, 부모님까지 포함이고 횟수도 제한이 없으니,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할뿐더러 우리도 최고의 '복지'로 생각한다. 웬만한 대기업 보너스가 부럽지 않다. 단, '예약"을 할 수 없다는 게 최고의 맹점이다. 좌석이 여유로운, 비수기의 경우, 아무런 걱정 없이 다니지만, 성수기의 경우는 자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아이들과 여행하려면, 학교 방학도 고려해야 하고, 남편 회사 휴가도 고려해야 한다. 성수기에 자리가 없는 줄 알면서도 성수기 여행을 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꽤 있었다. 여행 며칠 전부터 끊임없이 부킹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며, 애가 타는 날이 지속된다. 혼자 여행한다면, 한자리 정도야 비는 경우가 있지만, 4명의 가족이 가려면, 적어도 4자리는 있어야 하니,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나의 이런 '애탐'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행 좋아하는 남편은 방콕 호텔을 떡하니 예약해놓고, '이 호텔은 '노쇼'하면 환불도 안되니, 무조건 가야만 한다"라며 슬며시 압박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시스템에 가족 모두가 익숙해져 갔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예약 현황'을 시시 시각 체크하는 건 나만의 몫이었고.... 정말, 꼬인 경우는  인천공항까지 갔는데, 결국 못 타고 공항 주변 '을왕리'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비행기에 '두 명' '두 명' 나눠 탄 적도 있고 한자리가 모자라 나랑 애들 세명이 먼저 가고, 남편이 밤 비행기로 따로 오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 해외 어디를 가더라도 비행기 '좌석'이 모자라면, 치러내야 하는 전쟁이다. 외국 공항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 난처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차라리 '돈 주고 저가 항공권'이라도 살걸?이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운 좋은 경우는 이코노미석이 만석이고, 비즈니스석이 비었을 경우, 타이항공 직원은 업그레이드를 시켜준다. 정말 이경우는 '띵호아''대박'이다. 비행기 화장실 옆 끝자리라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는데..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게 되다니... 정말,  인간지사 '새옹지마'를 수시로 느낀다. 혹자는 말한다. '그럼 비수기에 여행하라!"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학원 빠지기도 그렇고, 방학에 집에만 있기도 그렇고 등등의 이유로 알면서도 이 지옥 같은 전쟁을 지난 30여 년 치러내었다. 그래서 우리 직원끼리는 "여행 어땠어?"라는 질문이 "여행의 내용을 묻는 게 아니라 '좌석'문제없이 잘 댜녀왔냐?라는 은어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 기장님이 오셔서 자리를 부탁하기도 한다. 해당 항공사가 만석이거나, 타이항공 시간대가 좋아서 등등의 이유로 나오시곤, 정말, 간절히 간절히 '자리 애원'을 하신다. 요즘은 항공사 직원이 점점 늘어나다 보니, '직원을 받을 때 지켜야 하는 순위 규정'이 있고 또 매우 엄격하다. 안 지켰을 때 즉각적 클레임이 들어오므로, 무조건 rule 대로 할 수밖에 없지만, 과거에는 이러저러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과거 승무원 시절에는 거의 '혼자'의 여행이므로, 성수기에도 자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만석이어도 늘 '한자리'는 해결이 되었다. 정말, 자리가 없는 경우는 항공기 기장님을 만나면 해결이 되었다. 승무원 출입구에서 해당 항공편 기장님을 기다리다가, 자리가 없으니 cockpit seat (조종석)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미주나 유럽 등의 장거리 비행은 조종사가 4명이라 (조종석 자리도 4 좌석) 어렵지만, 아시아권 단거리 비행은 조종사가 2명이므로 늘, 2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타이항공도 공식적으로, 정말 자리가 심각하게 없는 경우는, '칵핏'자리를 줄 수 있게 하고 있다. (단, 무조건 타이항공 직원에 한하여) 그런 식으로 조종석에 앉아서 여행한 게 2-3번 있었던 거 같다. 조종석에 앉으면 그 엄청난 기계를 조작하는 파일럿이 괜히 멋있어 보이고 숨소리라도 내면 방해될까 하여, 조용히 바깥경치에만 몰입했다. 실제로 비행기 이착륙 순간은 '파일럿'들이 극도로 긴장하는 순간이고, 사고도 거의 이착륙 순간에 난다. 항공기가 일단, 이륙하여 안전고도에  다다르면, '자동항법'으로 운항되니, 그때부터 조종사들도 안전띠를 풀고 농담을 시작한다. 그들이 가장 긴장하는 이착륙 순간이 나에겐 '최고의 sky 뷰'를 선물 받는 순간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얻어걸린 '행운'이기도 했다. 안전고도에 이르고 적당한 담소가 끝나고 나면, 심심한 시간이 찾아왔다. 계속 말할 거리도 없고, '침묵'도 어색하고 게다가 '영어'로 해야 하는 대화도 불편하고 등등의 이유로 밖으로 나온다. 승무원들은 만석의 비행기에서 승객들을 핸들 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러면, 나는 승무원들의 침실로 향했다. 보잉 747-400 등 대형기는 장거리용이라, 비행기 끝 화장실 옆 숨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8개 정도의 간이침대로 이루어진 침실이 있는 걸 알기에.(물론, 소형기에는 없다). 사무장의 허락을 받고, "나는 지금부터 잘 것이니, 기내식도 필요 없고 , 도착 때까지 나 찾지 말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180도로 편안히 펼쳐진 하늘 위 침대에서 '숙면'을 취했다.


결혼 이후, 지상직을 할 때다. 그날도 역시 아침 비행기에 자리가 3자리밖에 없어, 나와 아이들만 먼저 떠나고 남편은 오후 비행기로 가야만 했다. 그런데, 아침까지만 해도 있던 자리가, 예약이 더 들어와 저녁 비행기마저 만석이 돼버렸다. "내 남편, 밤 비행기는 꼭좀 태워줘!"라는 나의 특명을 받은 동료직원은 남편을 비행기에 태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기장에게 '조종석'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단다. 하지만, 남편은 '타이항공 직원'이 아닌 '직원 가족'이므로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기장이 우리의 사정 얘기를 듣고 "very exceptionally"를 외치며 태워주셨다고 한다. 업무로  자주 보는 사이에, 게다가, 애들 데리고 방콕에  나와 가족들이 먼저가 있다고 하니, 거절하면서도 맘이 안 좋았나 보다. 하긴, 뭐 결국 기장도 여행할 땐 항공사 직원 티켓을 사용하고, 스탠바이 해야 하는 같은 운명 아닌가? ㅎ ㅎ ㅎ

나중에 남편이 말했다. 이착륙할 때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스카이 뷰'에 감동받았고, 차원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륙하고 나니 좀 어색해져서 밖으로 나왔지만, 자리가 없어 서성이고 있었다. 이를 본, 승무원들이 화장실 옆 본인들이 앉는 승무원 좌석을 제공해 주었단다. 그런데, 그 좌석은 식사 테이블이 없어 무릎 위에 '오봉'(식판) 올리고 식사한 게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웃으며 떠올려보는 기억들이지만, 성수기 여행 때마다 치러낸 구구절절 스토리는 아찔하기만 하다. 이 글을 읽는 항공사 직원분들은 '핵 공감'하시며 저마다의 스토리가 한 보따리 일 것이다.

남편에게 '칵핏 좌석'을 허락해 주셨던 기장님과 함께.

다른 항공사 규정은 모르겠지만, '타이항공'은 승객이 '칵핏'구경을 원하면 해주기도 한다. 물론, 이착륙 순간은 안되므로 구경한다고 해봐야, 낮시간에는 파란 하늘, 밤에는 까만 하늘밖에 없다. 가끔 운 좋으면 지나가는 항공기도 보인다. 이때는 기장님이 손 흔들고 인사하라고 농담도 하신다.비행기 로고등을 보고,같은 타이항공 비행기라면 COCKPIT 무선통신으로 "HELLO"하며 실제 인사하시기도 했다. 비행기 이륙 후에는 기장님도 한가하시니, 승무원을 통해 정중히 한번 '칵핏 관람'을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 기장님 성향에 따라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도 있으리라.


PS..

위 내용과 별개로, 갑자기 생각나서 써본다.

해마다, 수능날  '영어 듣기 평가'가 있는 시간대인 오후 3:30-4:30 에는 모든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 착륙을 해야 하는 비행기는 공항 도착 후에도  빙빙 공중에서 선회하며, 해당 시간을 피해서 착륙한다.

 위 사진 기장님이 "한국은 대학 입학시험 때문에 항공기도 멈추는 '유일한 나라'라고 '엄지 척' 하셨던 게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본다. 남편을 조종석에 태워준 보답으로 식사도 대접하고, 그 이후 위 기장님과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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