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동료 승무원 몇 명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화장품 향기가 '향수'인 거 같긴 한데.. 오히려 역겹기도 하고외국인 냄새처럼 느껴져, '향수'는 관심밖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행기에서 탑승안내를 하고 있었다. 어떤 외국인 여자승객이 꽤나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며 내 곁을 지나갔다.
'상당히 매혹적인 강한 이끌림'이라는 표현 외에 그 향을 설명하지 못하겠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 향수의 이름을 알아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I love the scent of you. What perfume did you use?"
(나는 너의 향기가 너무너무 좋아. 그러니 제발 '향수'이름 좀 알려줘 ㅎ ㅎ )
그날 이후부터 이 향수는 나의 평생의 '시그니처 향기'가 돼버렸다.
비행기에서 만난 승객들로부터 수시로 "무슨 샴푸/비누 쓰시냐? 무슨 향수 쓰시냐? 내 와이프/여자친구 사주고 싶다 등등의 찬사를 참 많이도 들었다.
당시 교제했던 남자친구도 나의 향기 때문에 내가 더더욱 맘에 들었다는 표현을 했었다.
외국을 넘나들며 원하는 타이밍에 못 만날 때그는 나의 향수향을 대신 맡으며 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도 했다.
회사 다닐 때는 직원들이 "부장님 향기 너무 좋아요! 좀 전 화장실 다녀오셨죠? 화장실에도 잔향이 남아 있어요" 라고 했다.
울 딸들이 어렸을때는 '엄마 회사 갈 때 나는 냄새'라고 표현하고 '엄마 냄새 너무 좋아!" 하며 나를 껴안고 놔주질 않았다.
큰딸은 '엄마'를 생각하면 향기가 떠올라요.라며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향수는 그 사람의 고유 체취와 버무려져 '향'을 발산하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향수를 다른 사람이 뿌렸을 때는 조금은 다른 냄새로 느껴지기도 한다.
울 딸들이 본인향 찾겠다며, 이거 저거 다 뿌려봐도 여태 못 찾는 걸 보면 일찌감치
나의 향기를 찾을 수 있었던 나는 참 행운이었던 거 같다.
요즘도 가끔 센치해지고 싶을 때는 향수병에 코 박고 한껏 향을 음미해 보기도 한다.
과거 비행하던 시절, 공항근무하던 시절, 연애하던 시절 순간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로 '향수'의 위력이 대단하며, 비싼 금액을 치를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제주살이를 하던 때이다.
나이가 들수록 '노인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수시로 잘 씻고 깨끗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친정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얘야! 너 쓰는 향수 나도 좀 사줘라! 나이 들어도 좋은 냄새 풍겨야 사람들이 내 곁에 오래 머물 테니까 말이야!" 아버지에게도 나의 향수가 괜찮게 느껴졌나 보다.
당연히 같은 종류의 남성용 향수를 사드렸고, 그 후로 아버지 곁에만 있고 싶어지는 매직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