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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Feb 12. 2023

아버지의 눈물

친정 아버지 이야기.

나의 아버지는 울보다.

눈물이 참 많으시다.

올 85세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눈물을 많이 보이신다. 기뻐도 슬퍼도..눈물이 금새 고이신다.


벌써 40 여년전 얘기다.

1983년 시작했던 '이산가족 찾기'

이산가족도 아니시면서, 날마다 tv를 보고 또보고..명장면은 재방송까지 같은장면 또 보시며 우셨다..

오죽하면 엄마가 옆에 세수대야랑 수건 갖다놓으라고 하셨을까?ㅎ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첫 눈물이었던거 같다. 물론 그이후에도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흘리시는 감성파 남자셨다.



1990년 대학 졸업후..5년정도 외국에서 산적이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과 전화도 쉽지않던 시절..너무 외로운 순간이 많아서 부모님께 편지를 많이썼다. 당시 사귀던 남친과도 헤어지게 되어 죽을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도 않았건만..아버지가 구구절절 마치 시인같은 글솜씨로 답장을 해주섰고 위로를 해주셨다. 아버지께 처음 받은 편지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수려한 글솜씨에 또 놀랐다.

(엄마말에 의하면..아버지가 펜팔연애의 고수 였다고 한다. 엄마도 글솜씨에 반해서 결혼하셨고..

결혼후에도 총각행세해서..집으로 편지오는 여인들이 있었다고 한다..ㅎ

웃으시며 말씀하시는 거로보니..심각했던건 아닌듯해서 다행이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는

당시 친구들에 비해 결혼을 늦게 하게 되었다


서른살 넘어가는 딸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퍼붓는 엄마때문에 의기소침한 나에게

"혼자살아도 멋지게 능력갖고 살수있으면 결혼 안해도 된다!"

 "혼자 자취한다고 대충대충 아무거나 먹지말고... 예쁜그릇에 정갈하게 음식차려서 먹고 자기관리 잘하고

 외로워하지 마라!" "굳이 쫓기듯이 나이찼다고. 억지로 할수 없는거 안다"며 달래주셨다.

 

아주 어렸을적에는 너무 "공부 공부 성적 성적!!!" 만 하셔서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성인이 되면서부턴 너무 다정한 딸바보 아버지로 기억된다.


과거 편지에서 아버지가

내가 첫자식 이었고 잘키워보고 싶은 욕심에..너무 '공부' 스트레스를 준거 같아 너무 후회되고 사과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게 인상적이고 기억이 났다.

(기회가 된다면 30년전 아버지 편지도 공개해 볼께요 ㅎ)



다시 나이를 먹고 결혼을 했고, 두딸아이 키우며 치열하게 맞벌이의 삶을 살았다.

나 사느라고 '부모님' 생각을 까먹기도 하고, 내리사랑이라고 부모님 보다는 내새끼 생각에 열중하는 날이 많았다. 고맙게도 두분은 크게 아프시지도 않고, 건강히 과수원 경작을 하시며, 자식들에게 일절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제주분들이 전통적으로 매우 독립적인 사고방식이 있어, 자식에게 기대는 것을 엄청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정신없이 지내다보면 오랜동안 전화를 못드리기도 했다.


" 넌 엄마 생각은 아예 안하나보다!" 라며 오묘하게 나를 나무라시는 엄마에 비해 아버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니 전화 자주 못해도 된다!" 라고 하셨다.

나이들어 감에 따라 점점 외로운 시간이 많을거같아 걱정되어 "아버지 외롭지? 너무 심심하지? 하루가 너무 길지?"라고 하면 아버지는 " 내 인생의 속도는 80km/h 야. 50대는 50km/h 60대는 60km/h 쟎아!..

나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 ! 라고 답변해 주시니, 오히려 미안함에 내가 눈물이 났다.



 시간은 흘러흘러,, 60세 정년퇴직을 할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갑작스런 코로나 사태에 명퇴를 하게 되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이한 항공사 근무였기에, 50대 이상 직원들은 피할길이 없었다.

갑작스럽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15개월 정도 지난 현재 이순간까지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있긴하다.


남편은 퇴직을 1년반정도 남겼고, 큰딸은 직장인 ,둘째는 대학생 이지만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엄마! 지난 20년간 우리는 늘 엄마가 그리웠었어. 엄마가 항상 집에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10년은 엄마가 우리 계속 돌봐줘야 해! 라며 앙탈을 부렸다.

'이제 스무살 넘은 성인인데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 뒷바라지 해야하니?" 라며 소리도 질러보고바쁘다고 손가락 까딱 안하려 할때는 정말 미운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과거 아이들이 엄마 그리워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혹은 어차피 시집가면 평생 할텐데..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림을 하고 있다.

할일없고 심심한 것보다 나를 아직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분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년, 3월 -4월 약 한달 동안은 친정 제주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스무살 대학입학하며 서울로 올라가, 직장생활 결혼 육아등을 하며 살다보니, 36년 세월이 흘렀고, 이렇게 한달씩이나 부모님과 한공간에서 지낸는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집안 청소하고, 식사준비 해드리고 , 말벗해드리고, 병원 같이 가드리고 하니,부모님은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아예 "우리 같이 살자! 아님 한달은 제주, 한달은 서울 이렇게 살면 안되니? 라고 살짝 강한어조로 말씀하시니...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도 "너무 오래 엄마가 없는건 싫어 ! " 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TV 보는걸 참 좋아하신다.

동물의 왕국 같은걸 좋아하셨는데, 이번에 보니, '아프리카 아이들 구호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고 계셨다.

EBS 등에서 하는 자선 프로그램인데.. 아버지는 "21세기에 저렇게 산다는게 말이 되냐? 믿을수 없다" 며

또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는 옆에서 "네 아버지 맨날 저거 보면서 질질짜고, 후원금 볼때마다 내고..정기후원하고.. 또 그 단체에 전화해서 제대로 돈이 잘 전달되는지 몇번씩 확인하신다"며 또 눈을 흘기셨다.


그리고,네 아버지 얼마나 심심한지 각종 광고 보험 전화 다 받아서, 쓸데없는 약사고, 후원금 내고..

에휴 정말 왜 그러나 몰라? 그러다 전화금융사기 당할까? 걱정이다. "라며 계속 내게 일러바치시는 거다.


"아버지! 왜 그러셨어? 그러다 큰일나요! 진짜 조심해야해! 라고 하니, 아버지는

"그 사람들도 돈 벌어야 쟎니? 그토록 애원하는데 어떻게 안사? 알면서도 내가 영양제 좀 산거야!"

"나 아직까지는 그런거 분별가능하니 걱정마라 !" 하신다.

"아버지! 날고뛰는 경찰, 형사, 변호사도 속았데! 자만하면 안되요!" 하니.. "알았다고" 하신다.


외롭지 않다고 호언장담 하시던, 아버지가 외롭고 심심해서 이런종류의 모든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다시 맘이 짠했다. 더더욱 부모님께 최선을 다했고, 부모님은 "울딸 있으니 정말정말 좋다!"며 "우리랑 살자!!"를 계속 외치셨다.


그러던중, 평소 허리가 안좋았던, 남편이 허리디스크가 터졌다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빨리 오라는 독촉이 서울에서 왔다. 직장 다니는 큰딸도, 사회 초년생 회사 첫근무라 힘들어하고 , 둘째도 개인적으로 힘든일이 많으니 집안 분위기가 안좋다는 것이었다. 엄마 빈자리가 컸나보다.


'가지말고 우리랑 살자"시던 아버지도 "빨리 준비해서 올라가라! 허리가 아프면 혼자서 얼마나 서럽고 힘들겠니?"라며 또 눈물이 가득 고인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작년 6월 그렇게 서울로 왔고, 남편은 허리수술후 많이 회복되었고, 두딸도 안정되었고, 평온해 졌다.


중간중간 말씀은 안하셔도 나를 간절히 기다리는 느낌이 있어, 다시 제주로 한달정도 다녀오려구 하고 있다,

"아버지! 제가 병원 치료받는 일정도 있고해서 3월정도 갈께요!" 하니 엄청 반가운 목소리로

"얼마나 있을건데?"라고 물으신다.

"아마 2주정도 있다가 또 서울 왔다가 또 갈게요! 식구들이 너무 오래 집 비우는건 싫데요!!"

라고 하니, "아 ... 그래? 그렇구나.. 그럼 그렇게 해!" 라고 하시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아마도, 한번 올라가면 다시 금방 오진 않을거라는 생각 하시는 걸까?"

아버지의 힘빠진 대답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사실, 나도 너무 오랜 기간을 서울에서 산탓인지, 제주에 있으면 좀 답답하고 정체된 느낌이 든다.

여행으로 가는 제주와 직접 사는 제주의 느낌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 퇴직만 하면 부모님과 1년이라도 살수 있는줄 알았는데, 우리 가족을 그리고 내 삶을 중시하는 감정이 먼저 드는걸 보면...제가 이기적인 걸까요?


나를 이등분해서 서울 제주 반쪽식 쓰고 싶네요...^^


눈물많고 감수성 충만하시고 따뜻하신 우리 아버지... 건강하셔요...

당신을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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