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5년 전 친정아버지 팔순잔치를 맞이하여,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이 편지를 모아, 기념 책을 발간한 책 표지이다. 일본 '고레다 히로카즈'감독의 유명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타이틀 아래 아버지 옛날 사진을 넣고, 하단 부분에는 명대사인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일이죠"라는 소제목을 달아 세상 하나뿐인 소중한 '아버지의 책'이 완성되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큰며느리가 '키'를 잡고 책 속에는 다양한 가족사진과 편지 '친지들의 축하인사'까지 넣어 끝내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위한 '책'을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더구나, 책을 열어보니 20여 년 전 상견례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때의 심정, 맞벌이하며 시부모님 도움받았던 일에 대한 감사, 매해 시부모님 생신 케이크 커팅하는 모습 사진 등을 연도별로 게시하여 부모님과 조카들이 세월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다 볼 수 있었다. '딸'도 하지 못한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낸 올케에게 너무 감사했다.
사실, 친정인 제주에는 장남만 거주하고 차남과 딸인 나는 서울에 거주하는 탓에, 자연스럽게 집안 여러 행사는 큰 며느리가 주동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미안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항상 삶을 '기록'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런 상황에 큰 자료제공까지 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엄지 척'을 수없이 보내는 내게 올케는 오히려 " 13여 명의 가족 모두가 '편지'를 빨리 써서 제출하라는 '독촉'에도 불만 없이 신속하게 '자료 사진'이나 '축하편지' 등을 보내오는 모습에 오히려 감동했다고 전했다. 쉬울 것 같지만, 가족 모두의 단합된 '협조'없이는 어려운 일이라며, 본인도 보람 있고, 행복했으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던 나와 막내 남동생도 "뭔가 우리도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하자"며 의기투합하였고, '팔순 축하 영상'을 만들기로 하였다. 친정에다 '옛날 앨범'을 다 보내달라 하여 부모님 어릴 때 사진, '결혼사진' 우리 어렸을 때 사진 등등을 배열하며 엣 추억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주말마다 '작업'을 하였다. '영상'에 소질 있는 동생이 '영상작업'을 하고 , 나는 글을 쓰고, 울 딸들도 내레이션을 하는 등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대망의 팔순 생일 잔칫날, 우리는 일단, 제주의 모 사진관으로 모여 가족 전체 사진을 찍었다. '리마인드 웨딩'느낌으로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는 컨셉과 케쥬얼복을 통일해서 입는 컨셉으로 진행했다. 단순히 기념 촬영하자는 목적이었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너무 고조되었다. 미용실에 들러 '신부화장'까지 한 친정어머니는 고우셨고, 여전히 슬림하고 꼿꼿하게 관리를 잘하신 아버지도 턱시도가 괘 잘 어울리는 바람에 근사한 '사진'들이 마구 배출되었다. '주책'이라고 드레스랑 턱시도 안 입는다 하셨던 부모님은 어디 가신 건지, 능숙하게 '입맞춤'포즈까지 하시는 두 분 ㅎ ㅎㅎ... 나머지 가족들도 모처럼 입어보는 근사한 차림에 꽤 흥분하며, 행사를 즐겼고 얼굴에 는 웃음이 넘쳐났다.
웨딩 콘셉트 촬영 컷
케쥬얼 차림 촬영 컷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한 달여 동안 준비한, '팔순 영상' 감상 시간이었다. 동생이 미리 빔프로젝트를 준비하였고
우리 모두는 불을 끄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가족별 사진, 영상 인터뷰 등을 감상했다. 끝자락에는 '하늘 같은 든든함''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모 은행에서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이 play 되며 가족 모두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여전히 잊을 수 없는 '팔순잔치'였다. 친정에 가면 위 두 개 콘셉트의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아버지의 책'이 있고, 거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팔순 영상'을 올려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클릭'하도록 만들어 두었다.
이글의 시작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시작한 것인데 '팔순잔치'사연으로 화제 전환이 돼버린 감이 있다.
'딸'의 퇴직을 아버지는 좀 아쉬워하셨다. 집에만 있으면 도태되는 '삶'이라고 생각하신 건지, 자꾸 나보고 의미 있게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던 중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 하니, 생각 이상으로 기뻐하셨다. 글을 쓰는 것도 아무나 못하는 쉽지 않은 것이고, 기쁘다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축하하셨다. 하,, 그래서 나는 글쓰기에서 더 이상 발을 빼기가 어려워진 거 같다.ㅎ ㅎ ㅎ